[IP노믹스]<특별기획/특허강국으로 가는 길>(3)말뿐인 특허개방

#A기업은 삼성전자가 대·중소기업 상생을 목적으로 개방한 특허 네 건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거절했다. 두 건은 공동 권리자가 있어서, 나머지 두 건은 현업 부서에서 이전불가 의견을 밝혔기 때문이다. A기업 담당자는 “개방특허 일부는 현업 부서 검토나 동의가 없어 금액·조건 모두 준비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공동 권리자가 있는 특허를 상대 동의 없이 공개한 것 자체가 거래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말뿐인 특허개방

특허는 지식 `재산권`이다. 시장이 가치를 결정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특허거래시장이 없다.

정부는 특허거래 활성화를 위해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특허개방정책`을 펼쳤다. 대기업에 특허를 중소기업에 유·무상 이전하도록 종용하고, 중소기업은 사업에 필요한 특허를 대기업에서 사들일 수 있다고 홍보했다. 대기업은 불필요한 특허를 처분하고 중소기업은 특허를 쉽게 확보하는 윈윈을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선뜻 특허 이전에 나서지 않았다. 반도체 소자를 생산하는 한 대기업은 사업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반도체 생산장비 특허 이전을 꺼린다. IBM 등 선진 기업이 자사 사업에 필요하지 않은 특허를 매년 과감히 포기하는 것과 대조된다.

특허품질도 문제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 공개된 특허 대부분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활용가치가 없는 옛날 기술이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이처럼 대기업 상당수가 정부 정책에 떠밀려 특허거래시장에 나왔을 뿐 특허개방 의지는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앞선 A기업은 3년 전에도 SK하이닉스 특허 매입을 고려했지만 임원이 특허 이전에 따른 책임문제를 우려해 매각이 진행되지 않았다.

곽은경 KT 미국변호사는 “특허소송 손해배상액에서 파생되는 특허가치가 낮아 미사용 특허도 수요처에 매각하기가 어렵다”며 “기업 입장에서 판매한 특허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거나 해외 기술 유출로 비치는 점도 염려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제도나 시장을 정비하지 않고 특허개방정책을 펼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대기업 관계자 사이에서는 현재 사용하는 특허까지 개방대상에 포함하라는 정부 요구에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복수의 관계자는 `강제` 특허개방보다 실제 수요와 공급에 따라 특허가 거래되도록 시장 형성에 정부가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조한 특허거래

특허개방에 관심이 많다는 LG그룹 실적도 저조하다. LG는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에 특허 5만2400여건을 개방했다. 개소 1주년 기념 발표에 따르면 성사된 특허 양도는 모두 92건이다. 전체 개방특허 0.17%, 유상개방특허 2%다. 구본무 LG 회장이 센터를 수차례 방문한 끝에 얻은 성적표다.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한국발명진흥회가 운영하는 IP마켓 거래실적도 부진하다. 발명진흥회가 지난해 성사시킨 특허거래는 434건으로 2015년 315건 대비 37% 증가했으나 IP마켓 전체에 등록된 특허·실용신안 13만여건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김상범 발명진흥회 특허거래전문관은 “정부에서 특허출원을 전제로 연구용역을 발주하다 보니 질 낮은 특허를 양산하는 폐단이 생겼다”며 “출원 외에 선행특허 매입을 지원하는 등 특허거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 고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모 기업 특허거래 담당 팀장은 “자체 보유기술로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개발하는 것은 어려울 뿐더러 시간·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한 제품에 적용하는 기술만 수천건에 달하는 현실에서 다른 업체 특허를 매입하는 것도 특허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의미다. 이 팀장은 “더 우수한 제품을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는 오픈 이노베이션 확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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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진 IP노믹스 기자 mj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