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에서 근무하는 대표이지만 내성적이어서 직원들과 얼굴도 못 마주친다. 시골에서 상경한 스무 살 소심한 대학생은 말 한마디 못하고 속이 썩는다. 귀신을 본다고 놀림 받아 소심해진 이십 대 후반 주방보조는 몸도 약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너무 어렵다.
드라마 `내성적인 보스`의 은환기(연우진 분), `청춘시대`의 윤은재(박혜수 분), `오 나의 귀신님`의 나봉선(박보영 분)을 각각 가리키는 말이다.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는 비현실적으로 극소심한 캐릭터는, 사실 우리 주변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실제 저런 사람이 있어? 아무리 그래도 저건 과장된 것 아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약간만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차분히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 극소심한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도 어느 순간 무척 소심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내성적인 보스` 스틸사진. 사진=tvN 방송 캡처](https://img.etnews.com/photonews/1702/918926_20170201103922_644_0001.jpg)
혼자 밥 먹고(혼밥), 혼자 술 마시고(혼술), 혼자 커피 마시고(혼커), 혼자 영화 보고(혼영, 혼무), 혼자 공연 보고(혼공), 혼자 등산하는(혼등)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적 트렌드 중 하나가 됐다.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면하고 관계를 쌓으려하기보다는 온라인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싶은 경향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온라인에 더욱 초점을 맞추는 시대에, 주변의 극소심한 사람들은 더더욱 관심 밖에 있게 된다. 극소심한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에 누가 있는지 이제 관심이 없어지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소심하고 용기 없는 우리, 혹은 우리 안의 한 단면을 드라마 속 주인공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드라마 속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사실 현실 속 우리 모습일 수 있다.
![`내성적인 보스` 스틸사진. 사진=tvN 방송 캡처](https://img.etnews.com/photonews/1702/918926_20170201103922_644_0002.jpg)
◇회사 대표이지만 직원의 얼굴을 쳐다도 못 보는 은환기 `내성적인 보스`
회사 대표가 내성적이고 극소심하다? 설마 그럴까 싶지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카메라 앞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이는 연예인 중에서도 대인 기피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무서워서 못 만나는 것인데, 건방지다고 유세 떤다고 갑질을 한다는 오해를 받는다.
세상에는 극소심한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다. 강남역, 홍대 인근, 대학로, 명동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민망해서 거리를 걷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군가 내게 말 걸어올까 봐 매 순간 두렵다. 패스트푸드점에서 계산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시간이 무섭다.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것도 불편하고, 결국 내 차례가 되면 주문하면서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보스` 스틸사진. 사진=tvN 방송 캡처](https://img.etnews.com/photonews/1702/918926_20170201103922_644_0003.jpg)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 외국어에 능통하지 않은 사람이 외국에 처음 나가거나 외국인과 대화를 하게 되면 `내성적인 보스` 은환기 이상으로 소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현실적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성적인 보스`에서 은환기 비서인 김교리(전효성 분)도 소심한 캐릭터이다. 비슷한 소심함을 겪어도 주변 반응과 참고 버텨야 하는 상황은 다르다.
◇시골에서 올라온 스무 살 여대생, 셰어하우스에 같이 사는 언니들에게도 말 붙이기 어려운 윤은재 `청춘시대`
새로운 시작은 특정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두려움을 준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어떤 이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이상의 강도를 가질 수도 있다. 이성도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아닌 같이 사는 언니들에게도 말하기가 불편하다면?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답답함을 표현할 것이다. 그 표현은 그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고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소심하게 만들 수 있다. 그를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강력하게 끌어 리드하기보다는 서서히 지켜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는 점을 `청춘시대`는 보여줬다.
![`청춘시대` 스틸사진. 사진=jtbc 방송 캡처](https://img.etnews.com/photonews/1702/918926_20170201103922_644_0004.jpg)
◇특정한 계기를 통해 극소심해진 나봉선 `오 나의 귀신님`
`오 나의 귀신님`의 나봉선은 어릴 적부터 좀 모자랐다. 건강도, 인물도, 친화력도 모자랐지만 견딜 만했는데, 주변 귀신들이 자꾸 말을 걸기 시작한 이후 세상 깊숙한 곳으로 더욱 숨어들어갔다.
특정한 계기를 통해 극소심해지는 경우는 지속적일 수도 있고, 일시적일 수도 있다. 시험이나 면접을 보려고 하면 눈이 침침해지고 말이 잘 안 나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어도 혼나고 있을 때는 아무런 의사 표시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오 나의 귀신님` 스틸사진. 사진=tvN 홈페이지](https://img.etnews.com/photonews/1702/918926_20170201103922_644_0005.jpg)
◇판타지 주인공이 아닌, 현실을 보여주는 주인공에도 관심을 갖자
드라마에서는 판타지를 주는 주인공에 시청자들이 열광한다. 톱배우가 출연하더라도, 스타 세계가 아닌 스태프 세계를 다룬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프로듀사`는 톱배우들이 출연했지만 그들의 명성과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오 나의 귀신님`은 음탕한 처녀 귀신이 빙의되면서 캐릭터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방송된 곳이 공중파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시청률을 확보했다. `청춘시대`와 `내성적인 보스`는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는 높게 형성하고 있다.
드라마 속 극소심한 비현실적 캐릭터를 드라마 속 캐릭터로만 공감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캐릭터에 대한 관심을 통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면 어떨까? 내 주변에도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처럼 세상으로부터 숨어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드라마에 공감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만들기를 바란다.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