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지난달 12일 귀국 뒤 3주간 민생행보를 펼쳤지만 비난 여론과 지지율 정체를 극복하지 못하고 설 연휴를 기점으로 불출마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유력 대선주자 지지도 2위를 달리던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하면서 전체 대선판도 요동치게 됐다.
반 전 총장은 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잘못된 정치를 고치고 국민대통합의 포부를 말했지만 순수함이 잘못된 소식들로 인격살해 수준의 음해를 받았다”며 “정치 교체를 이루고자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선 불출마를 포함해 사실상 정치 중단을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2일 귀국 이후 전국을 돌며 유력 정치인과 다양한 계층의 국민을 만났던 행보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의 잘못된 정치 풍토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던 점을 토로했다. 10년간 유엔 활동으로 모국을 떠나있었지만 정치 참여 불가피성을 에둘러 설명했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국가 리더십 위기, 민생·안보, 경제위기 등 우려가 피부로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최근 자신의 행보에 대한 비난으로 자신과 가족은 물론 10년간 지내온 유엔 명예에도 상처를 남겼다며 정치인의 이기주의적 태도에 함께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정치교체 명분도 실종됐다는 뜻을 내비쳤다.
반 전 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죄 말씀을 드리고 제 자신에 대해서도 혹독한 질책을 한다”며 “이루고자 했던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않고 10년에 걸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경험을 통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에 어떤 방법으로든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1일 기자회견문
갑자기 요청한 기자회견, 참석해줘서 감사하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 1월12일 귀국 이후 여러 지방도시들 방문해 다양한 계층의 국민을 만나고 민심을 들을 기회를 가졌다. 또 종교사회 학계 및 정치 분야 여러 지도자와 만나 그분들 이야기도 들었다. 그동안 제가 만난 모든 분들은, 우리나라 정치·안보·경제·사회 모든 면에 있어서 위기에 처해있으며 오랫동안 잘못된 정치로 인해 쌓여온 적폐가 더이상 외면하거나 방치해선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여기에 최근 최순실 사태 등으로 국가 리더십의 위기가 겹쳤다. 특히 이러한 민생과 안보, 경제위기, 난국 앞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 기대를 저버린 채, 자신의 목적에 급급한 모습 보여 많은 분들이 개탄과 좌절을 표명했다. 10년간 나라밖에서 느낀 우려가 피부로 와닿는 시간이었다. 전세계 돌면서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를 보고, 그들의 지도자를 본 저로선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데 미력이나마 몸을 던지겠다는 일념에서 정치에 투신할 것을 심각히 고려해왔다. 갈갈이 찢어진 분노를 모아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통합의 정치 문화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말한것이다. 이것이 제 몸과 마음을 바친 지난 3주간의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를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를 일삼고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됐으며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제가 10년 공직에 몸담았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김으로써 결국 국민에게 큰 누를 끼쳤다.
또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이기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기에 이르게됐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런 상황에 비춰 저는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저도 이러한 결정 하게된 제 자신에게 혹독한 질책을 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심경에 대해, 국민 여러분 너그러이 양해 바란다. 오늘의 결정으로, 그동안 저를 열렬히 지지해주신 많은 여러분과 그간 제게 따뜻한 조언을 해주신 분들, 그리고 저와 가까이서 일했던 많은 분들 실망시키게 해드려 죄송하다는 깊은 사죄의 말을 드린다. 어떠한 질책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제가 이루고자했던 꿈과 비전은 잃지 않겠다. 또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 아니면 안된다는 유아독존식 태도는 버려야할 것이다.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우리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선 맡은 분야의 일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 저도 유엔사무총장으로서 경험과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헌신하겠다. 국민 여러분, 가족의 행복을 기원한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