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View┃영화] ‘더 킹’, 말하는 방식이 매력적인 ‘내레이션 영화’

출처 :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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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영화 ‘더 킹’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말하기’와 ‘보여주기’ 방식이 있다. 연극에서는 독백이나 방백으로, 소설에서도 자주 쓰이는 방법이다. 다만 대부분의 영화는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을 통해 ‘보여지기’를 선보인다. 그래서 내레이션을 통해 ‘말하기’를 하는 영화들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내레이션 영화는 내레이터가 말하는 것 그대로를 관객에게 느끼게 하기 때문에 관객은 자신들의 눈이 아닌 등장인물의 시선에 의해 따라 가게 된다. 한국영화에선 ‘비트’ ‘태양은 없다’ ‘달콤한 인생’ ‘친절한 금자씨’ ‘군도’ ‘탐정 홍길동’ ‘아가씨’ ‘아수라’ ‘더 킹’ 등이 대표적이며, 외에도 작은영화 ‘걷기왕’, 다큐멘터리 영화 ‘홀리워킹데이’, 할리우드 영화 ‘500일의 썸머’ ‘향수’ ‘300’ ‘그랜드부다페스트’ 등이 있다.

이런 내레이션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어 영화에 몰입감 선사한다. 게다가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줘 전체적인 흐름의 이해를 돕는다. 인물이나 상황을 정확하고 요약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친절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동주’는 윤동주(강하늘 분)가 읽는 시가 내레이션 역할을 해 감수성을 살리기도 했다. 대부분 등장인물이 내레이터를 맡는 것과 달리 ‘군도’는 전문 성우를 기용해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를 묵직하고 신비롭게 만들었다. 독특한 존재가 내레이터를 맡는 경우도 있다. 심은경이 주연을 맡고 지난해 개봉한 ‘걷기왕’에서는 소(안재홍 분)가 내레이터다. 이는 영화의 코믹 요소 중 하나로 존재하는데, 느릿하고 순박한 목소리를 가진 안재홍이 내레이터를 맡아 영화 전체에 사랑스러움을 더한다. 특히 만복(심은경 분)이 그를 “소순아”라고 부르면 “난 수컷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해 관객을 폭소케 한다. 특히 마지막에 그가 암소라는 점이 밝혀지며 영화 최대의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출처 : '더 킹'
출처 : '더 킹'

최근 개봉한 영화 ‘더 킹’은 감정이입이나 전체적인 흐름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내레이션이 큰 역할을 했다. 초반 태수(조인성 분)는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죽기 전 기억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며 자신의 삶을 나열하기 시작한다.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내 아버지는 양아치였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강렬한 첫 문장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와 비슷한 임팩트를 준다. 이런 문장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입 밖에 꺼내지 않는 생소한 표현들이다. 때문에 엄마가 죽은 모습을 보여주거나 아버지가 양아치라는 모습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보다 직접 말하는 것이 더 충격적인 효과가 발생한다.

처음부터 태수의 내레이션으로 흘러가는 영화는 마지막 내레이션으로 전율을 선사한다. 태수는 마지막에 권력에 대한 비리를 폭로하고 국회의원 후보가 되는데, “내가 당선 됐냐고? 그건 나도 궁금하다. 그건 당신이 결정하니까. 당신이 왕이니까”라며 마지막에 관객마저 영화를 끌고 들어와 버린다. 세상의 주인은 권력이 아니라 ‘당신이 주인이다’라고 말해주는 ‘더 킹’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가 내레이션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조인성은 박태수 역을 맡아 1970년대 고등학생부터 2000년대까지 30년의 세월을 연기한다. 그는 양아치 고등학생이었다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고, 권력에 큰 관심이 없다가 권력의 맛을 보는 모습 등 입체적인 인물이다. 만약 ‘더 킹’이 말하기 방식이 아닌, 보여주기 방식을 택했다면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격을 모두 표현하기엔 부족했을 지도 모른다.

앞서 한재림 감독은 내레이션을 많이 사용한 이유에 대해 “실제 관객이 잘 모르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관객이 욕망과 권력의 세계를 제대로 보기 바랐다. 다큐적인 방식이 영화를 쉽게 이해하게 만들고, 쉬우면 따라가기도 좋다”고 전했다.

물론 ‘더 킹’은 말하기뿐만 아니라 보여줄 때는 확실하게 보여준다. 과거 정부와 대통령들의 모습을 나열하거나 그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 어떤 내레이션 없이 보여주기만 함으로써 관객들에게 판단을 맡긴다.

전자신문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