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광고의 하이라이트는 잡티 없는 투명한 피부를 가까이 보여주는 컷이다. 마치 `이 제품만 바르면 나처럼 돼~`라고 광고모델이 속삭이는 듯하다. 하지만 제 아무리 좋은 화장품도 없앨 수 없는 것이 바로 점이다. 의학적 용어는 모반으로 흔하게 보지만 사실 알려진 건 많지 않은 미스터리 중 하나다.
◇푸른 몽고반점부터 불꽃모양의 붉은 점까지, 오색빛깔 점들
대표적인 미스터리는 몽고반점이다. 태어날 때 등이나 엉덩이에 넓게 나타나는 점인데 몽고 민족 계통에서 많이 나타난다. 몽고반점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표피로 이동해야 할 멜라닌세포가 표피 아래층인 진피에 머무르면서 생긴다. 진피에 있는 멜라닌세포는 아기의 탄생과 함께 활성도를 잃으면서 멜라닌 생성을 멈추고, 기능을 다한 멜라닌세포는 하나둘씩 사멸하면서 점점 옅어진다. 1~2년이 지나면 세포가 모두 사멸하면서 몽고반점도 없어진다.
점은 색도 다양하다. `점`하면 검정색이 제일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붉은색, 푸른색, 흰색, 갈색 등 여러가지 색을 가지고 있다. 흔히 보는 검은 점은 표피에 가까운 점이다. 반면 푸른 점은 표피가 아닌 그 아래 진피 깊은 곳에 점이 생기면서 푸르게 보이는 경우다. 붉은 점은 혈관에 이상이 생겼을 때 많이 나타난다. 의학적 용어로 혈관성 점(모반)이라 부르는데 대표적인 것이 화염성 모반이다. 이름처럼 불꽃이 이글거리는 모양을 띠고 있다.
선천적으로는 모세혈관 기형을 타고난 아기에게 나타나는데 성장과 함께 점의 크기가 커지고 두꺼워지며 색도 더 진한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 이 외에도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거나 확장되면서 표피에 붉은 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흰색 점은 멜라닌세포가 파괴돼 색소가 없어지면서 생기기 때문에 사실 점이라 부르기는 애매한 면이 있다.
◇뇌와 신경계에도 점이 생긴다?
점은 생기는 곳도 다양하다. 피부에서도 표피와 진피뿐 아니라 부속기관인 기름샘에도 생긴다. 피지선 모반, 면포 모반이 대표적이다. 피부 외에도 뇌나 척수와 같은 신경계 계통에 생기기도 한다. 이 중 중추신경에 멜라닌세포 증식이 생기는 병을 신경 피부 멜라닌증이라 한다. 큰 점을 중심으로 주변에 20여개의 작은 점(위성 모반)이 나타나거나 척추가 있는 등 또는 뇌가 있는 두경부 쪽에 점이 생긴 경우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5~25%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도 하지만 뇌수종이나 정신지체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살펴봐야 할 것이 겨드랑이와 서혜부(사타구니)다. 이 부위에 밀크 커피색(감갈색) 반점이 나타나면 신경섬유종일 가능성이 있다. 점의 크기와 개수는 사춘기 이전에 최대 지름 5㎜ 이상, 사춘기 이후에는 15㎜ 이상의 커피색 반점이 6개 이상이거나 주근깨 양상으로 나타난다. 신경섬유종은 유전질환으로 신경에서 자라는 양성종양이다. 악성 종양은 아니지만 신경에 종양이 생기면서 뇌신경 장애, 안면 신경마비, 청각장애, 척추 측만 등의 질환을 동반할 수 있다. 영아기 때부터 사춘기, 모든 연령에서 나타날 수 있다. 크게 2가지 유형이 있는데 제1형이 90%로 대부분이다. 1형은 17번 염색체에 존재하는 NF1유전자 결함으로 발생한다. 근본적인 치료법은 아직 없고 발현되는 증상에 맞춰 치료한다.
◇점인 듯 암인 흑색종
흑색종도 위험하다. 언뜻 보면 짙고 큰 점처럼 보이지만 멜라닌세포에서 발생한 암이다. 흑색종은 크게 악성흑색점흑색종, 표재확산흑색종, 말단흑자흑색종, 결절흑색종 같이 4가지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흑색종은 말단흑자흑색종으로 전체 환자의 70~80%를 차지한다. 주로 손바닥과 발바닥, 손톱과 발톱에 생기는데 처음에는 검은 점에서 시작해 점차 넓어지다가 사마귀처럼 튀어나온다. 심한 경우 헐거나 피가 나기도 한다. 흑색종은 주로 피부에 나타나지만 점막, 안구, 뇌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흑색종 환자는 2009년 2819명에서 2013년 3761명으로 33.4% 증가했다. 초기에 발견하면 5년 상대 생존율(암 환자가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98%가 넘지만 치료 전에 전이가 되면 생존율은 30% 미만으로 떨어지는 만큼 조기발견이 중요하다.
다행히 자가진단이 가능하다. 흑색종은 일반 검은 점과 달리 형태가 비대칭적이며 가장자리가 삐뚤빼뚤하게 불규칙적이다. 미세하게 부분부분 색도 다르고 점의 직경이 보통 6㎜ 이상이다. 또 점이 점차 커진다는 특징이 있다.
치료는 수술이 보편적이다. 흑색종도 암이기 때문에 종양의 두께와 조직 침범 정도를 기준으로 0~4기로 나눈다. 완치 후에도 재발 위험이 높아 거울을 통해 몸 구석구석 관찰하는데, 자가 검진법으로 10년 이상 추적 관찰하는 것을 권장한다.
겨울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점을 빼기 위해 피부과를 찾는다. 질환 때문에 혹은 점의 위치나 크기 때문에 치료를 목적으로 점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다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버린 점이 거울을 볼 때마다 거슬린다는 게 이유다. 내 맘 대로 되지 않는 게 어디 점뿐일까. 예상치 못한 상황은 언제든 벌어진다. 그 때마다 신경 쓰고 짜증내봤자 내 몸은 스트레스로 망가질 것이다. 스트레스는 가고 평화로운 한해가 되길 소망해본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