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로 달리는 자동차는 허황된 꿈으로 치부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물로 자동차를 달리게 할 수 있다는 이론은 역발상 끝에 현재 수소연료전지 상용화로 이어졌다. 물로 달리는 자동차를 볼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
그 첫 모델이 바닷물(해수)로 전기를 만들어 저장하는 `해수전지(Seawater Battery)`다. 해수전지는 우리나라가 원천기술을 보유한 차세대 전지다. 상용화를 이루기만 하면 무궁무진한 경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올해 초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한국전력, 동서발전이 해수전지 상용화 프로젝트에 시동을 걸었다. 향후 3년 이내에 상용화 한다는 목표다.
신재생에너지 연구의 정점은 새로운 전지 개발이다. 차세대 전지 연구개발(R&D) 열기가 뜨겁다. 목표는 리튬이차전지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를 찾는 것이다. 리튬은 지각의 0.002%에 불과한 희소금속이라 화석연료처럼 언젠가는 고갈된다. 자연에 널린 풍부한 물질로 리튬을 대체할 수 있다면 물로 자동차를 달리게 하는 것 만큼 혁명적 기술이 될 것이다.
해수전지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수전지는 바닷물을 이용해 전기 에너지를 만들어 저장하는 차세대 전지이자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이다.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해수를 원료로 이용하기 때문에 제조 단가가 낮고, 제조 과정이나 전지 사용 과정에서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해수를 이용하면서 자체 열 제어가 가능해 과열로 인한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해수 대신 소금물을 이용할 수도 있어 가정과 산업체 전원 또는 ESS로 활용할 수 있다.
해수전지 작동 원리는 해수 속 나트륨이온으로 리튬이온을 대체하는 것이다. 나트륨이온은 리튬이온과 비슷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바닷물에서 나트륨 이온을 추출해 이를 음극으로 저장하고(충전), 다시 해수를 양극 삼아 나트륨이온과 반응(방전)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전기에너지가 만들어 진다. 해수를 계속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해수가 풍부한 해상·해저에서 대형 선박이나 잠수함의 전원으로 활용하면 유용하다. 해안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의 비상 전원장치에 적용할 수 있다.
해수전지 R&D 시초는 우리나라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이 지난 2013년부터 R&D에 나서 원천 특허 기술을 개발, 보유하고 있다.
연구 주역은 김영식 UNIST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 김 교수는 차세대 에너지 분야를 연구하다 해수를 원료로 이용하는 전지 개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미래부와 울산시 지원 아래 전지 소재 개발에 착수, 2년여 연구 끝에 지난해 해수에서 나트륨 이온을 추출할 수 있는 원천기술인 고체 세라믹 소재 기반 해수전지 셀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소재 대량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동전 형태의 해수전지 시제품을 제작해 상용화 가능성을 입증했다.
올해 초 UNIST와 동서발전, 한전이 해수전지 상용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년간 50억원을 투입해 친환경, 초저가, 고안정성 해수전지를 상용화한다는 목표다.
3개 기관은 에너지 충전 용량 10~20Wh(와트아워)급 해수전지 셀을 개발한다. 일반 스마트폰 전지 용량 규모로 상용화 가능 수준이다. 이를 연결하면 출력을 1kWh급까지 높인 상용화 해수전지팩을 제조할 수 있다.
이어 10kWh급 해수전지팩을 개발해 울산화력발전소에 시범 구축할 계획이다. 10kWh는 4인 가정이 하루에 필요한 평균 에너지량이다.
상용화 프로젝트는 해수전지 소재기술 개발에서 해수전지 셀기술 개발, 해수전지 플랫폼 제작, 해수전지 실증까지 4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에서는 음극 소재, 세라믹 전해질, 양극 소재, 촉매 소재 등 해수전지 구성 재료를 확보한다. UNIST 주도 아래 기존 소재 개발 성과를 상용화 수준으로 끌어 올린다.
2단계는 전지 기본 단위인 셀을 최적화, 표준화, 규격화하는 것이 목표다. 셀 최적화는 상용화 가능한 고출력 전지 제조의 토대다. 셀을 표준·규격화해야 양산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한전 주도로 고효율 성능을 발휘할 수 있고 전지팩 제조에도 적합한 각형 셀을 개발할 계획이다. 수많은 설계와 디자인 변형 적용, 반복 테스트를 거쳐야 하는 단계다.
3단계에서는 해수전지와 해수전지팩을 제조해 이를 에너지시스템으로 연계한다. 실물 전지와 ESS 개발의 최종 단계다. 동서발전 주도로 파일럿 시스템과 시스템 운용 기술을 개발하고, 해수전지와 전지관리시스템(BMS), 전력변환장치(PCS) 등을 연동해 평가한다.
마지막 4단계는 실증이다. 산업 현장과 비슷한 테스트 인프라를 구축한 후 해수전지시스템 적용과 운용을 점검한다. 상용화 후 확산을 위한 현장 적용 표준화, 해수전지 운영시스템 개발도 이 단계에서 완료해야 할 과제다.
정부와 에너지연구기관에 따르면 세계 ESS시장은 오는 2020년 약 47조9000억원, 국내 시장은 약 14조2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3개 기관은 해수전지 상용화 프로젝트를 통해 2020년 국내 ESS 시장의 10% 점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ESS 시장을 선도한다는 계획이다.
정무영 UNIST 총장은 “세계 첫 해수전지 원천 기술 개발에 이은 상용화 성공은 우리나라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새로운 미래 신성장동력이 될 것”이라 말했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