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지나 흙길이다.` 창업은 쉽지만 살아남기 쉽지 않은 국내 창업 생태계의 현실이다. 국내 창업기업 가운데 62%가 3년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다. 데스밸리(창업 3~5년차 기업이 겪는 경영난) 문턱을 넘지 못하는 셈이다.
15일 대한상공회의소 `통계로 본 창업생태계 제2라운드` 보고서에 따르면 창업기업 62%가 3년 이내에 폐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창업 진입 여건은 합격점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벤처기업 수는 3만1260개다. 세계은행 국가별 기업환경 보고서는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창업 소요 시간은 4일, 창업 부문 경쟁력 순위는 116위에서 11위로 평가했다. 미국(5.6일)보다도 창업 소요 시간이 짧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3년 이상 존속하는 창업기업이 38%에 불과하다. 창업에 도전하기는 쉽지만 기업을 이어 가기 힘들다는 의미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우리나라 3년 이내 기업 생존율은 조사 대상 26개국 가운데 25위를 기록했다. 3년 내 생존율이 가장 높은 스웨덴(75%)의 절반 수준이다.
현장에서는 민간 투자 유치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벤처기업 신규 자금 조달액 36.9%가 정부정책지원금이다. 벤처캐피털(VC) 규모가 증가했지만 투자가 초기·후기 기업에만 집중됐다. 벤처기업의 98.0%는 VC 투자 유치 경험이 없다. 엔젤 투자도 저조하다. 우리나라 엔젤 투자 규모는 2014년 기준 834억원이다. 25조원을 기록한 미국의 0.3% 수준이다.
창업 4년차에 접어든 A기업 대표는 경영자금 충당을 위해 최근 타고 다니던 차량을 중고시장에 내놨다. 그가 사업에 투자한 개인 돈만 이미 4억원에 이른다. A기업은 아이디어 정보기술(IT) 제품을 개발, 기업체들과 납품 계약을 협의하고 있다. 수요는 있지만 매출은 아직 미미하다.
이 대표는 “벤처캐피털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투자 대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면서 “데스밸리만 넘기면 반등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견디기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판로 개척의 어려움도 벤처기업 생존의 악재다.
실태 조사에서 벤처기업은 국내 판로 개척 문제(65.6%), 해외 시장 개척 문제(52.4%)를 경영 애로 사항으로 지목했다. 벤처기업의 74.9%는 `수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SW 엔지니어이자 5년차 창업가인 B씨도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새로운 판로 개척을 위해 매달 60~70개사를 찾는다. 실제 연락이 오는 기업은 1~2곳이다. 투자금이 고갈되기 전에 새 수익원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지울 수 없다. 그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 실제 필요한 수요처가 어디인지 찾는 것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창업에만 쏠려 있는 정부 정책을 지적한다. 창업 자체보다 민간 벤처투자 생태계 확충과 판로 확충 등 생존을 위한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의영 서강대 교수는 “창업 자체만 늘리는 것보다는 시장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정책 방향을 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창업기업도 확실한 수익 모델로 사업성을 증명해야 한다. 자금과 판로 개척 문제도 수익 모델 부재가 가장 큰 원인이다.
최병희 K-ICT창업멘토링센터장은 “기술력이 있어도 팔리는 물건을 내놓지 못하면 실패한다”면서 “매출이 없으니 투자 유치가 어렵고, 판로 개척까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다가 데스밸리를 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