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6>곱씹는 창조경제 출구 전략

[곽재원의 Now&Future]<6>곱씹는 창조경제 출구 전략

최근 국제정치경제에서 지정학(地政學)이란 말이 부쩍 많이 쓰인다. 매년 초 세계 10대 리스크를 발표하는 미국 컨설팅 그룹 유라시아는 올해 키워드를 `지정학의 쇠퇴`로 특징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건 미국제일주의는 세계 질서의 요체이던 안전보장, 자유무역, 자유 사회 실현이란 이념으로부터의 이탈을 뜻한다. 이는 곧 지정학을 지키는 리더십 부재로 해석된다.

미·유럽 선거에서 나타난 글로벌 엘리트와 금융·정치 계급에 대한 반발, 임금 정체와 격차 확대에 대한 분노, 이민과 난민에 대한 적의, 주류파 미디어에 대한 불신 등은 지정학 쇠퇴의 구체화된 현상이다.

중국의 군사력 대두와 러시아의 잇따른 대외 개입을 두고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캐플런은 “지정학의 역습”이라 했다. 후나바시 요이치 정치평론가는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 결정을 두고 `감정의 지정학` 등장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대마찰, 대분열, 대투쟁의 구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우리도 내향성 지정학에 빠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 외교평의회의 로버트 블랙윌은 세계가 현저한 지정학 쇠퇴기에 있을 때 `지경학(地經學·경제 수단을 이용한 지정학 목표 추구)` 확대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대표 사례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유럽 국가들의 중국 접근 같은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을 큰 화두로 삼아 나라 안팎의 사정을 파악하면서 국가 경쟁력 제고,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 등에 전력 투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온 나라가 4차 산업혁명에 신들린 듯하다는 비아냥도 있지만 국가 리더십 부재 속에 4차 산업혁명 대응 전략은 경제를 이끄는 나침반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지금부터는 4차 산업혁명 전략을 어떻게 짜고 어떤 방법으로 실현할지가 과제다.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의 도입으로 25년 안에 현재 일자리의 47%가 없어진다는 영국 옥스퍼드대의 예측치에 세계가 불안해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이 예측치가 기술 가능성을 보여 줄 뿐 고용이 늘어나는 부문은 일절 고려하지 않았음을 알고 기업 현장 조사를 벌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인 독일은 싱크탱크들에 조사를 의뢰, 일자리 감소가 9%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히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지만 앞으로 절대로 필요하게 되는 직업이 적지 않을 것이며, 인간과 직업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게 독일의 생각이다.

일자리 패닉에 빠져 있는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끌고 갈 재원과 동력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몇 달 새 시야에서 사라진 창조경제를 다시 들여다보자. 현 정부의 경제 정책 비전은 창조경제고, 추진 체계의 골간은 전국에 포진한 창조경제혁신센터다. 창조경제는 17개 혁신센터를 필두로 스타트업 캠퍼스, 창업사관학교, 민간투자주도 기술창업지원기구인 팁스, 대학창업보육센터, 창업선도대학, 디캠프, 구글 캠퍼스 등 입구 전략은 방대했다. 그러나 빠른 시일 안에 성과를 내고, 기존 기업의 성장 고도화를 유도하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출구 전략이 미흡했다. 지금은 기술 협력과 투자, 시장 개척과 글로벌 진출, 인수합병(M&A)이 활성화되는 오픈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닫힌 출구를 여는 것이다. 녹색 성장이 그랬듯 창조경제도 무시하기엔 참으로 아까운 자산이 꽤 있다.

곽재원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kjwon5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