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희 기자의 날]정당한 핑계란 없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뒷북일 수 있다. 최근 종방한 드마라 `도깨비` 명대사가 아직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평범하기 그지없는 날씨에 빗대 절절한 마음을 표현했다. 온갖 핑계를 댄 것이지만 이 대사는 싯구처럼 아름답다.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핑계는 어찌 이리도 `코미디`일까 싶다. 최근 특검과 박근혜 대통령은 대면조사를 놓고 힘 겨루고 있다. 며칠째 협의가 공회전이다. 앞서 일부 언론이 대면조사 일정과 장소가 확정됐다고 보도하면서 청와대 측은 특검을 믿지 못하겠다며 등을 돌렸다. 청와대는 대면조사 일정과 장소를 놓고 협의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특검이 언론에 관련 내용을 흘렸다며 `여론 플레이`에 강하게 비난했다. 특검은 역으로 청와대가 대면조사를 거부하기 위한 전략을 편 것이라고 맞섰다.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사건 본질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입장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 본다면 대통령 대면조사는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 가운데 하나다. 조심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러한 점을 인정하더라도, 조금 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특검에 지적할 것은 강하게 하되, 국민과 약속한 대면조사에는 성실히 임해야 한다.

[성현희 기자의 날]정당한 핑계란 없다

진정으로 국민에게 절절한 마음이 있다면 온갖 핑계를 대서라도 대면조사에 임해야 하는 것이 맞다. 대면조사를 계속 거부한다면, 그만큼 자신의 죄를 알고 있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버티기로 일관하다 특검의 얼마 남지 않은 수사 기간을 넘긴다면 역사에 길이 남을 수치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 대면조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입`에 달렸다. 특검에 소환된 이 부회장은 주말 이틀 연속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뇌물죄의 최고 정점인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진술을 확보하기 위해 이 부회장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 진술 내용은 대통령 대면조사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더 이상 버틴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부채를 갚아야 할 날을 자꾸 연기하면 이자만 늘게 된다. 끝내 갚지 않으면 파산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정당한 핑계를 만들지 않길 바라본다.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그 마음이 변치 않길 바란다. 대면조사를 받기에, 헌재에 출석하기에, 그 어떤 날도 다 충분히 좋다.

[성현희 기자의 날]정당한 핑계란 없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