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오락실, 고고장, 롤러장. 한때는 일탈의 장소로 인식됐지만 이제는 기성시대 추억의 장소다. 만화방과 오락실은 자금 청소년들도 아는 장소지만, 고고장과 롤러장은 용어조차 낯설 수 있다. 공부 안하고 몰래보던 만화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제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만화는 인터넷에서 웹툰이 되고, 영화 세계에서는 애니메이션이 됐다.
웹툰은 인터넷을 뜻하는 `웹(web)`과 만화를 뜻하는 `카툰(cartoon)`의 합성어다. 웹툰은 종이 만화가 디지털화된, 쉽게 말해 인터넷 만화라고 한정할 수는 없다. 종이 위에 그려진 만화가 인터넷 위에 그려진 웹툰이 되면서, 영상, 음향, 더빙, 플래시 기법 등 문화예술 첨단 트렌드가 웹툰과 함께 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 웹툰을 기반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는 더 이상 특이한 작품이 아닌 친숙한 작품이며, 작품의 소재를 찾을 때 인기 웹툰을 먼저 선택하는 제작진이 늘어나고 있다. 웹툰 중 일부 특정 작품만 영화나 드라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인기 있는 웹툰이 강력한 1군 후보가 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본 영화·드라마, 웹툰이 원작인 작품은
윤태호 작가 원작의 본격 정치 만화 `내부자들`은 확장판 영화 `내부자들:디 오리지널`까지 흥행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냉혹한 현실세계를 드라마에서 긴 호흡으로 전달됐다면, 영화로 만들어진 내부자들과 `이끼`는 좀 더 자극적으로 사회의 아픈 곳을 건드리고 있다.
기안84 `패션왕`, Hun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원작을 많이 변형한 패션왕은 59만 관객을 모아 영화로 크게 흥행하지 못했지만 원작에 충실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695만명이 관람했다. 원작에서 관객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캐치하지 못한다면 어설프게 변형하는 것보다 원작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됐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북한 공작원인 것을 숨기기 위해 찌질하게 달동네 바보 역을 소화한 김수현은, 원작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그의 다른 드라마 작품을 본 적이 없는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은밀하게 위대하게 때문에 오히려 섭외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후문도 있다.
강풀 원작 `26년` `이웃사람`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고, 순끼의 `치즈인더트랩`은 드라마에 이어 영화로도 제작 중이다. 임인스 `싸우자 귀신아`, 해츨링 `동네변호사 조들호`, 최규석 `송곳`은 웹툰과 드라마에서 모두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지난 10일에는 `한국의 웹툰`이라는 타이틀로 우표까지 발행됐다.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 주호민 `신과 함께`, 윤태호 `미생`, 조석 `마음의 소리` 등 한국 웹툰계의 기억될 만한 작품이 우표로 발행되면서, 이제 웹툰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라는 것을 전하는 계기가 됐다.
◇웹툰이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이유
웹툰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기 웹툰은 작품과 작가에 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어 기존 팬덤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을 먼저 고려할 수 있다.
웹툰의 팬덤은 기본적으로 탄탄한 스토리에 기인한다. 관객들로부터 검증된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다른 장르로의 전환이 긍정적이다. 스토리텔링 속에 인물 캐릭터 분리가 더욱 확고하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원작 소설보다 원작 웹툰이 영화화, 드라마화하기에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영화, 드라마 제작 과정을 보면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콘티(콘티뉴이티, continuity)를 작성하는데, 콘티는 일종의 만화로 표현된 시나리오라고 볼 수 있다. 시나리오가 영상화되기 전에 콘티로 시각화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웹툰은 이미 시각화된 채로 시작하기 때문에 영상화가 쉽다.
웹툰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 독자 감성을 파고드는 내용, 공감의 언어와 움직임을 담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소다. 영화와 드라마가 시대를 반영한다면, 이미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인기 웹툰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현재 영화화에 들어간 웹툰
우표로 먼저 만난 신과 함께는 고성지역에서 영화로 촬영될 예정이다. 관련기관은 업무협약서를 체결했다. 우리나라 민속 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드라마 `도깨비`가 선풍적 인기를 누린 점을 고려하면 이미 팬덤을 형성한 신과 함께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김보통 원작 `D.P 개의 날`도 영화로 제작된다. 연재를 시작한 2015년부터 누적 조회 수가 약 1000만회를 기록하고 있는 이 작품은, `탈영병 잡는 군인`이라는 소재로 청춘의 고뇌와 바람을 담고 있다.
김태헌 원작 `딥`은 제작비 100억원 이상 규모로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가 결정된 작품이다. 남정훈 원작 `아이`, 필명이 Meen인 오영석 원작 `독고`도 영화화가 진행 중이다.
웹툰 원작 영화, 웹툰 원작 드라마는 장르적으로 정착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웹툰 중에서 선택돼 영화화 드라마화되는 것을 넘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웹툰으로 먼저 만드는 시대도 올 것이다. 시나리오를 글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그린다고 생각하면 그 시대가 눈앞에 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