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졌다. 이른바 리먼 쇼크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 촉발된 금융 사태는 전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줬다. 그로부터 4개월 뒤인 2009년 1월말 스위스에서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이 열렸다. 행사 주제는 `위기 이후의 세계`였다. 포럼에서는 저성장과 위기가 일상화되는 뉴 노멀 시대의 도래, 기업가 정신, 혁신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다보스포럼은 이후에서 시대에 맞는 화두를 던졌다. 2010년 `더 나은 세계`, 2011년 `새로운 현실`, 2012년 `대전환`, 2013년 `유연한 역동성`, 2014년 `세계의 재편`, 2015년 `새로운 세계 상황`이 그것이다. 2016년에는 `4차 산업혁명의 이해`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알렸다. 세계 경제 새 질서에 대한 희망에 찬 주제를 숨가쁘게 등장시켰다. 올해는 4차 산업혁명을 얘기하면서 재빨리 정치쪽으로 화두를 돌려 소통과 책임의 리더십을 주제로 삼았다.
이 같은 다보스포럼의 질주 배경에는 디지털 빅뱅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스마트폰 등장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대거 등장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의 지평을 바꿨다. 디지털 혁신은 이제 우리 일상이 됐다.
라스베이거스 CES, 바로셀로나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하노버 CeBIT(세빗)은 디지털 빅뱅을 구체화해서 보여 준다. 27일부터 열리는 `MWC 2017`의 주제는 지난해의 `모든 것`(모바일 기술로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다음 요소(The Next Element)`로 바뀌었다. 모바일이 모든 일과 생활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다음 달 20일 개최되는 세빗 2017은 지난해의 `디지털 경제`에서 `무궁무진한 디지털 경제`로 주제를 키웠다.
올해 굵직한 기술 이벤트를 보면 오는 6월 아이폰 출시 10주년과 구글 개발자대회 10주년, 9월 딥마인드의 `스타크래프트2` 이벤트가 열린다. 10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5세대(5G) 이동통신 후보 기술 접수, 11월 테슬러의 범용 전기자동차인 `모델3` 출시, 12월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존의 5G 상용화와 구글의 완전자율주행차 발표 등이 이어진다. 올해는 인공지능(AI)과 5G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체로 많은 행사에서는 키워드로 올라와 3~4년 후에 주목을 받는데 AI와 5G는 단박에 톱 자리로 올라섰다. 실제로 CES 2015/2016에서는 사물인터넷(IoT), 스마트카, 헬스케어, 3D프린터, 드론,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이 키워드였지만 올해는 AI와 5G가 돌연히 끼어들었다.
10년 가까이 CES에 참석해 트렌드를 읽고 있는 염용섭 SK경영경제연구소장은 이런 현상을 “생각보다 더 빠른 미래의 진격”이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에서의 성패는 디지털 전환 속도에 달려 있다고 진단한다.
AI, IoT, 클라우드 컴퓨팅 등 디지털 기술로 기업 비즈니스 모델을 차세대형으로 얼마나 빨리 전환하는지가 승부처라는 것이다. AI가 시장과 만나는 속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이유다.
이제 세계를 보려면 다보스를 보고 다보스를 알려면 디지털 빅뱅 현장인 CES, MWC, CeBIT을 봐야 한다. 올해는 더 빨라진 미래를 모두가 실감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곽재원 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