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다. 1961년 이스라엘과 2017년 서울은 56년의 세월에도 뚜렷한 대칭구조를 이룬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6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독일 나치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 그 악행의 민낯을 알리기 위해 생방송을 기획한 두 인물을 다룬 영화 ‘아이히만 쇼’ 이야기다.
이 재판은 살아남은 유대인 희생자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었던 끔찍한 학살의 기억을 낱낱이 증언하면서 세기를 뒤흔든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15개 혐의로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시종일관 무표정하게 무죄를 주장한다. 차례로 등장한 증인들은 참혹한 기억을 떠올리며 울고 기절하고 설마 했던 방청객과 시청자들은 경악한다.
영화는 당시 생중계됐던 방송 영상을 교차편집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관객들은 실제 재판이 벌어지는 법정에 앉아 증인들의 진술을 듣는 듯 전율을 느낀다.
‘아이히만 쇼’의 촬영감독과 그가 묵고 있던 호텔 여주인 간의 대화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유효하다. 방송이 성공을 거두자 호텔 여주인은 촬영감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여주인이 과거 자신이 겪은 일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면 “설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방송 후에야 비로소 유대인조차 참혹했던 사실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 재판이 있기 전까지 나치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을 유대인조차 공유하지 못한 것이다. 112명의 증언이 쏟아지지 않았다면, TV를 통해 전 세계로 알리지 않았다면 아우슈비츠 사건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사건으로 기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쿠르트 리스에 따르면 법이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다. 사회와 갈등 세력 간의 구조에 의해 법의 잣대는 축소되기도 확대되기도 한다. 때로 재판의 기준이 되는 법에 맞게 사실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진실은 밝히기도 어렵고 지켜내기도 힘들다는 얘기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가슴을 데운 시민들이라면 올 봄 극장에서 차가운 머리로 스크린을 응시할 필요가 있다. 56년 전 이스라엘 법정은 어떤 판정을 내렸는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므로. 히틀러가 죽었어도 파시즘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대사는 그래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 (3월1일 개봉)
김인기기자 i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