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 상장 정체 현상이 심각하다.
중견기업은 공개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취약한 지배구조와 이로 인한 가업상속 부담이 주된 원인이다.
이런 상황에 지배구조 개선을 강제하는 상법개정안까지 발의됐다. 이대로 진행되면 경영권 유지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중견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획기적 유인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6일 한국거래소 및 중견기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상장사 71개 가운데 중견기업은 13개뿐이다. 이 중 자본시장에 처음 발을 들인 중견기업은 단 3개사에 불과했다. 동양파일을 제외하면 핸즈코퍼레이션과 제이에스코퍼레이션 2개뿐이다.
중견기업 상장은 정체 상태다. 새로 이름을 올리는 중견기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상장한 중견기업 대다수는 이미 계열사를 통해 상장을 경험한 기업이다.
상장사협의회와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13년 644개였던 상장 중견기업은 2014년 전혀 늘지 않았다. 주식시장이 호황이던 2015년에도 유가증권시장에 첫 발을 들인 중견기업 집단은 세진중공업, 토니모리, 세화아이엠씨 3개사에 불과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이미 계열사 상장을 마친 기업은 자회사나 관계사를 추가 상장할 때도 지분 구조를 정리할 부담이 적지만 완전히 신규 상장하는 중견기업은 명의신탁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공시 부담과 기대 이하 공모가 산정 등으로 상장을 철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전했다.
비상장 중견기업은 상속·증여세가 고민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중견기업 72.2%는 가업상속에 따른 상속·증여세 조세부담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정부는 상장사에는 가업상속 특례를 위한 주식 보유 요건을 30% 수준으로 완화해주고 있다.
하지만 상장으로 얻는 자금조달 효과보다는 공시 등 각종 부담이 더 크다. 5년 이상 일정 수준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할 뿐 아니라 상장 이후에는 경영권을 노리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까지 견제해야 한다. 상장 없이 경영권을 승계하자니 50%에 달하는 지분에 붙는 세금을 감당하기 벅차다.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중견기업 경영권을 이어받는데 필요한 상속세나 증여세는 대부분 지분을 팔아 마련할 수밖에 없다”며 “상장 이후에는 각종 할증이 발생하면서 경영권을 이어가는데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견기업도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해야 기업을 성장시켜 갈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상장 후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기초 장치조차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자진 상장 폐지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실제 한국타이어그룹 계열사 아트라스BX는 지난해부터 자진 상장 폐지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증권가 안팎에서는 한국타이어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절차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2015년에는 중견기업 태림포장이 사모펀드 IMM PE에 매각됐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기업 가치 훼손을 우려한 창업주가 회사를 통째로 매각한 것이다. 사모펀드에 팔린 회사는 결국 지난해 상장 폐지됐다. “상장을 유지할 실익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시장에서는 상장기업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편법 증여와 상장 폐지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법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강제하는 방법으로는 가뜩이나 상장을 꺼리는 기업의 자본시장 이탈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다.
김명선 상장사협의회 선임연구원은 “가업상속 공제제도는 상장회사에는 그림의 떡”이라며 “대기업들이 공익재단을 설립하고 일감몰아주기 등 형태로 경영권을 유지하는 주된 이유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증여세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상법개정안 발의를 계기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황현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고 건전한 기업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며 “민주화·재벌개혁 또는 경영권 유지·방어라는 관점에서 평행선을 달리던 기존 논의를 탈피해 건전한 기업 발전이라는 공통 목표를 갖고 합의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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