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새출발, 거버넌스 혁신]<1>왜 `새 거버넌스` 인가

올해 정부 예산이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겼지만 15년 전 100조원을 운용하던 시스템에 맡겨야 할 상황이다.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정부 세종청사 앞 신호등이 주행을 허락하고 있지 않다. 현재의 정부 시스템 앞에 선 한국경제를 보여 주는 듯하다. <전자신문 DB>
올해 정부 예산이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겼지만 15년 전 100조원을 운용하던 시스템에 맡겨야 할 상황이다.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할 이유 중 하나다. 정부 세종청사 앞 신호등이 주행을 허락하고 있지 않다. 현재의 정부 시스템 앞에 선 한국경제를 보여 주는 듯하다. <전자신문 DB>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과와 무관하게 대한민국은 이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반년을 정국 혼란 속에서 허비했다. 탄핵 인용 시 5월 대선이든 기각 시 12월 대선이든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국민 절대 다수의 생각이다. 그 첫 출발점이 정부 운영 방식과 국정 철학을 담은 거버넌스다. 5월 대선이면 헌정 사상 최초로 인수위원회 없는 대통령 출발이다. 선거 준비부터 새 대통령 취임까지 두 달 안에 끝마쳐야 하는 촉박한 일정이다. 출발과 동시에 바로 뛸 수 있는 정부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 12월 대선이라 하더라도 거버넌스는 가장 중요한 새 출발의 첫 단추다. 전자신문이 지금 새로운 대한민국 거버넌스에 관한 고민을 던지는 이유다. <편집자주>

대한민국은 총체 위기다. 저성장, 양극화 문제를 넘어 해외 열강의 보호무역주의 장벽이 높아지면서 우리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스마트폰을 이을 새로운 미래 성장의 주력 품목은 보이지 않는다. 이 와중에 조류독감(AI) 등 국가 재난 사태가 벌어지면서 대한민국 리더십과 지휘 체계의 부재가 안고 있는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초유의 위기에 4차 산업혁명까지 겹쳤다. 선제 대응은 놓쳤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응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올해 정부 예산은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선다. `슈퍼 예산`을 꾸려 나갈 조직 체계는 15년 전 100조원 예산을 운용하던 시스템에서 변한 것이 없다. 일부 조직을 붙였다 떼는 것만 반복했다. 대기업이 됐는데도 중소기업 수준의 운영 시스템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혁신 변화는 없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선 새로운 미래 지도를 그려야만 한다. 국가 미래 성장 동력과 새로운 국정 철학에 초점을 맞춰 거버넌스를 새로 짜야 한다.

◇400조 슈퍼 예산, 효율성 높은 정부 운영 필요

올해 대통령이 선출되면 처음으로 정부 예산 400조원 운용을 지휘한다. 국가 전략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눈먼 돈`에 `헛돈 유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국가·예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절실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혁신을 도모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에도 집중해야 한다. 400조원 예산을 알차게 써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고지에 더 늦지 않게 도달해야 한다.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1일 “10년째 1인당 GDP 3만달러를 돌파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존 정부의 운영 방식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 입증된 것”이라면서 “대한민국은 3만달러 시대를 돌파할 혁신 정부 조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주력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성장을 위한 신산업을 육성하는 새로운 정부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그리고 선택과 집중으로 운영 효율성을 최고로 높여야 한다.

대통령의 의지나 정치력만으로는 어렵다. 대통령 직속 태스크포스(TF) 성격의 위원회는 늘 겉핥기에 그쳤다.

일부 부처의 권한 강화나 막연한 신설 같은 수준으로도 미흡하다. 우선 손볼 곳이 많은 경제 분야는 현 경제부총리가 모두 챙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총리 역할과 기능을 실제 부가 가치나 국가 성장 역량이 만들어지는 산업 쪽으로 중심을 옮기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조정이 필요하다.

◇IMF보다 더한 경제 위기, 장기 전략 절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가 68로 전 분기(86)보다 18포인트(P) 떨어졌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위기 때보다 더 악화됐다.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은 훨씬 더 심각하다. 생산 감소, 투자 감소, 고용 감소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는 전체 산업을 덮칠 태세다. 과감한 투자를 통한 혁신이 나오기 어렵다. 리스크 감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혁신의 발걸음을 내디디기가 힘겹다.

앞으로 정부는 변화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기업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불황의 긴 터널에서 희망을 향해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국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장기 전략이 절실하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질 먹거리 발굴에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재도약의 토대를 닦을 수 있는 방안으로 정부 조직 구조만큼 강력한 수단도 없을 것이다. 정부 철학과 강력한 정책 추진 의지가 그대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부처의 역할 조정을 놓고 소모성 `축소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이제는 미래 비전을 키우는 `확대 경쟁`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효율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신성장을 위한 혁신은 요원해질 수 있다”면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 균형 있고 공정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 타워` 구축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