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군수 시장에서 가장 큰 사업으로 꼽히는 미국 차기 고등훈련기(APT:Advanced Pilot Training) 수주전이 안갯속에 빠졌다. 당초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록히드마틴 연합이 유리했지만 최근 들어 보잉·사브 연합 수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보잉 측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접촉을 늘리면서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관측이다.
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APT 사업은 이달 말 입찰 제안서 접수를 마감한다. 이번 입찰에는 KAI·록히드마틴 연합과 스웨덴 사브·미국 보잉 컨소시엄만 참여할 전망이다.
당초 참여할 예정이었던 미국 방산업체 `노스롭 그루먼`이 최근 입찰을 포기했다. 또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와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미국 업체 `레이시온`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다.
APT 사업은 미 공군에서 향후 수 십년간 사용할 훈련기 350여대를 새로 도입하는 사업이다. 이번 사업은 1차로 약 17조원 규모 물량이 투입된다. 향후 가상 적기, 해군 등 후속 기체(33조원)와 제3국 시장 물량(50조원) 등을 합치면 공급 규모는 총 100조원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KAI는 록히드마틴과 손잡고 국산 T-50 고등훈련기를 개조한 T-50A를 제시하고 있다. KAI·록히드마틴 연합은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T-50A는 기존에 기체를 개량한 모델로 개발비가 적게 들어 단가 낮추기 유리하다. 또 조종석에 미 공군이 요구하는 대화면 시현기(LAD)와 공중급유장치 등을 갖추고 가상훈련(ET) 기능을 통해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KAI·록히드마틴 연합은 지난해 11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T-50A 시제기 시험비행을 실시하는 등 발빠른 행보다. 록히드마틴이 세계 최대 방산업체이자 지난해 F-35 등 최신 전투기 사업을 다 수주하는 등 기술력이나 로비력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상황이 많이 변했다. 트럼프 대롱령은 취임과 동시에 록히드마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미 국방부에 공급하는 F-35 전투기 가격을 깎아달라고 요구한 것. 결국 록히드마틴은 약 한 달 만에 90대 가격을 당초 가격보다 7억달러(약 8000억원) 낮아진 85억달러(약 9조7500억원)에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잉 측에도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보잉은 발빠르게 대통령 전용기 가격을 40억달러(약 4조8000억원) 아래로 낮췄다. 또 현재 보잉은 방위산업본부를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워싱턴으로 이동해 전방위적 작전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B787-10 출시 행사에도 트럼프 대통령을 초청했다.
보잉·사브 연합은 지난해 9월 처음으로 전용 훈련기 `T-X`를 공개했다. 보잉 T-X는 최대추력이 KAI T-50A(1만7700lb)와 동일하지만 중량이 보잉 T-X가 1만2500lb로 KAI T-50A(1만4200lb)보다 가볍다. 또 FA-18 전투기와 유사한 수직꼬리날개를 장착해 공중전에서 기동력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KAI는 미 APT 사업 수주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올해 신규 수주 목표는 6조6000억원으로 지난해(3조원)보다 2배 이상 늘렸다. 하지만 지난달 말에야 760억원 규모 첫 수주를 따내며 불안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올해 수주 목표 달성과 향후 수십년 간 먹거리를 찾기 위해서는 미 APT 사업 수주가 절실한 상황이다. 하성용 KAI 대표는 이번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KAI 관계자는 “이달 말까지 제출하는 입찰 제안서 작성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