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건산업이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5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및 헬스케어 업계에 따르면 일부 대형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은 `환자 중심 의료` 환경 구축에 뒤처졌다. 환자 중심 의료(Patient-Centered Care)는 환자가 의료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병원은 이를 바탕으로 환자 선호·요구·가치에 맞춰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공급자 중심 의료체계에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정밀의료와 함께 현대의학 모델로 꼽힌다.
최근 새롭게 부각되는 이유는 ICT 발전 때문이다. 과거 환자 정보는 병원 안에서 획득하는 데 그쳤다. 이제는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등으로 환자 스스로 정보를 생성한다. 유전체 정보 등 데이터 범주도 늘었다. 환자 정보가 세밀해지면서 소비자 요구를 분석해 맞춤형 의료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환자도 의료 의사결정 과정에서 자신의 정보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선진국은 앞서 환자 중심 의료 개념을 정책에 반영한다. 영국은 소비자 의료 이용경험평가 조사를 실시, 관련 결과를 국민건강서비스(NHS) 웹사이트에 공개한다. 환자 선택권 보장 차원이다. 미국도 헬스케어 사업자·시스템 소비자평가(CAHPS)로 소비자 의료 이용경험을 공개한다. 이 데이터는 의사·병원 서비스 평가에 반영돼 재정적 지원 평가 잣대까지 된다. 미국 내 페이션트라이크미(PatientLikeMe)와 같은 웹사이트에서는 40만명이 넘는 환자가 질병 증상, 복용 약, 치료법, 부작용 등을 자발적으로 공유한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반부터 환자 중심 의료 구현을 외쳤지만 여전히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환자 간 정보 교류가 이뤄진다. 국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환자 중심 의료를 외치지만 대부분 설문을 통한 서비스 수준 제고가 목적이다. 이마저도 부족한 1, 2차 병원은 공급자 중심 의료체계가 여전하다.
최두아 휴레이포지티브 대표는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ICT 투자 여력이 있는 대형병원은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을 활용해 환자 중심 의료 환경을 구축한다”면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1, 2차 병원은 환자가 참여하고 싶어도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했다.
환자 참여의지도 부족하다. 환자 중심 의료에 대한 인식과 인센티브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유럽 등에서는 환자 스스로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의료기기나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도 요구사항을 적극 개진한다. 정부, 병원, 제약사 등은 인센티브까지 제공해 의료정보 수집 창구로서 참여를 유도한다.
병원 ICT 투자를 확대해 환자 정보 수집, 분석을 고도화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확대할 창구를 늘려야 한다. 환자 중심 의료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정립해 인식을 제고하고, 참여 확산을 위한 인센티브 정책 수립도 고민해야 한다.
이재호 서울아산병원 유헬스센터 부소장은 “정부가 작년부터 인센티브와 패널티를 동시에 제공하는 환자 중심 의료 정책을 시작했다”면서 “제도 정착을 위해 디지털헬스케어 투자 확대와 명확한 인센티브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