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화학물질 줄이기 위한 우리 노력](https://img.etnews.com/photonews/1703/929414_20170307125347_197_0001.jpg)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동기가 작용하는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다섯 가지 욕구로 구성된 `욕구 단계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다섯 가지 욕구 가운데 생리 욕구 다음으로 안전 욕구를 선정했다. 애정과 소속 욕구, 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보다 안전 욕구를 더 중요한 기초 욕구로 본 것이다.
최근 화학물질에 대한 두려움이 고조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 구미 불산 누출 사고 등으로 `케미포비아`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화학물질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러한 여러 위험 요소에도 화학물질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삶의 요소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의류 등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먹고 마시는 식품에도 화학물질은 쓰인다. 상업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구상의 화학물질은 약 1억300만종이다. 우리나라는 비공식 자료를 포함할 때 4만5000여종이 유통된다. 2014년 화학물질 통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화학물질 수는 1만6150종, 유통량은 5억톤으로 2010년보다 15.8% 증가했다. 2015년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 3600여곳에서 배출한 화학물질 배출량은 5만3557톤으로 2014년보다 1.3% 감소했다.

정부는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의 화학물질 자발 감축 유도를 위해 2004년부터 3년 안에 30%, 5년 안에 50% 배출을 줄이는 30/50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 결과 200여개 사업장이 약 1만6000톤의 화학물질을 줄이는데 성공했다. 2012년에는 울산, 여수, 대산 등 산업단지에 소재한 38개 기업이 자진해서 환경부와 화학물질 배출을 줄이는 SMART 프로그램 협약을 맺고 실행하고 있다. 170여개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배출 저감 기술 지원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또 일정량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배출 저감 계획 수립을 의무화하는 법안도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됐다. 기업체 화학물질 배출 저감 방식이 계획은 의무화되고 이행은 자율 방식으로 추진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1989년에 `독성물질저감법(TURA)`을 만들 때 사업장 독성 물질 저감 계획을 강제로 이행하게 할 것이냐 자율에 맡길 것이냐는 논쟁이 있었다. 결국 저감 계획 수립은 의무로 하고 이행은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타협했다. 그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법률이 잘못 만들어졌다고 강하게 반발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몇 년 후 저감 계획 이행을 기업 자율에 맡긴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별기고]화학물질 줄이기 위한 우리 노력](https://img.etnews.com/photonews/1703/929414_20170307125347_197_0003.jpg)
알권리법으로 인해 사업장의 독성 물질 취급 정보가 주민에게 모두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규제가 없다 하더라도 독성 물질을 많이 사용하는 기업이 성실하게 독성 물질을 줄이지 않는다면 지역 사회에서 문제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셈이었다. 또 선도 기업이 저감 계획을 제대로 수립하고 잘 이행하기 시작하자 다른 기업에도 압력이 됐다. 결국 기업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이러한 매사추세츠주의 독성물질저감법 초안을 만든 켄 가이저 교수는 규제와 비규제가 어우러지는 것을 `균형(밸런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규제와 비규제 밸런스란 깨어 있는 주민을 전제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모델 정착이 성공하려면 기업은 배출 시설 공정을 개선하고 위해도가 낮은 대체 물질을 사용하는 등 화학물질 배출 저감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등은 깨어 있으면서 감시 역할을 하는 주체가 돼야 하고, 정부도 기업체에 행정·재정·기술지원 등이 성공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우리도 매사추세츠주처럼 기업·지역주민·시민단체·정부의 역할이 시너지 효과를 거둬 화학물질 배출을 더 줄일 수 있게 되고, 이러한 노력으로 국민이 화학물질로부터 더욱 안심한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정섭 환경부 차관 czarchung@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