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경제가 성장한 만큼 국민 삶의 질은 개선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국내 통계로는 처음 입증됐다. '경제 성장'과 '삶의 질' 사이에 간극을 좁히려면 정부가 자살률 증가 등 가족·공동체 문제, 고용·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통계청과 한국삶의질학회는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내총생산(GDP) plus Beyond 국제 콘퍼런스'에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이하 종합지수)를 공개했다.
통계청이 지표값을 제공하고 학회가 종합지수를 작성했다. GDP 중심 경제지표의 한계 극복이 근본 취지다. GDP가 세계에서 대표 경제지표로 활용되지만 실제 국민 삶과는 괴리가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영국, 캐나다 등 세계 주요국과 국제기구가 GDP 보완·대체 지표를 개발·공개해 왔는데 우리나라도 이번 처음 종합지수를 선보였다.
집계 결과 2015년 종합지수는 기준년인 2006년보다 11.8% 증가해 완만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GDP는 28.6% 증가해 국민 삶의 질 개선은 GDP 증가율의 41.3%에 머물렀다. 삶의 질 개선이 경제 성장 수준을 따라가지 못 한 것이다.
통계청과 학회는 캐나다를 비교사례로 제시했다. 캐나다는 2005~2014년 기간 GDP가 8.8% 증가했고, 우리 종합지수와 유사한 CIW는 3.9% 증가해 GDP 증가율의 44.3%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보다 캐나다가 경제 성장과 삶의 질 사이에 간극이 상대적으로 좁다는 설명이다.
학회측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삶의 질도 높아지면 좋겠지만 분배구조, 계층이동 문제 등으로 삶의 질 개선이 GDP 성장에 못 미친다”면서 “우리나라는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경제 성장에 근거한 기대수준을 고려하면 개선이 미약하다”고 말했다.
영역별로는 가족·공동체(-1.4%), 고용·임금(3.2%), 주거(5.2%), 건강(7.2%)이 전체 종합지수를 끌어내렸다. 특히 가족·공동체는 유일하게 감소를 기록했다. 한부모 가구 비율, 독거노인 비율, 자살률이 증가하며 가족·공동체 부문 삶의 질이 악화됐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전체 종합지수보다 증가율이 낮거나 감소한 영역은 우리 사회 취약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정책을 수립하는데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생각과 달리 삶의 질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 것은 '삶에 대한 만족도'와는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비교 지표로 활용되는 갤럽자료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우리나라 삶에 대한 만족도는 실제로 하락 추세다. 그러나 종합지수는 '개인 삶의 질'과 '사회의 질'을 포괄한 개념이라 삶에 대한 만족도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향후 종합지수는 GDP를 보완·대체하는 지표로 활용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통계청은 “각계 의견과 국제보고서 권고를 존중해 이번 종합지수는 학회가 작성하고 통계청은 지표값을 제공했다”며 “국민 삶의 질 측정이 종합지수로 나아가지 못하면 GDP가 여전히 지배적인 지표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역별 국민 삶의 질 지수 증감율(단위:%, 자료:통계청, 한국삶의질학회)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