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게임을 하거나 게임 머니를 마음껏 쓰고 싶은데 용돈이 부족해요. 부모님이 외출하신 사이 컴퓨터를 하고 싶은데 비밀번호가 걸려 있어요. 친구가 스마트폰 메신저로 무슨 대화를 하는지 훔쳐보고 싶어요. 온라인 게임 채팅창에 욕을 한 사람을 찾아서 혼내주고 싶어요.'

이런 생각이 들 때 많은 친구들이 '해커'를 떠올려요. 어두운 방 안에서 뛰어난 컴퓨터 기술로 프로그램을 조작하고 인터넷·사이버 세상을 활개 치며 돌아다니는 모습이죠. 영화나 드라마, 만화 속에서도 흔히 나오는 '나쁜 해커'에요. 자신이 가진 기술과 능력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범죄를 저지르죠.
그렇다면 해커는 모두 다 나쁠까요? 아니에요. 범죄와 테러를 막으며 사이버 세상을 안전하게 지키는 '화이트 해커(화이트 햇 해커)'도 있어요. 해킹 기술을 연구하고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이 약한 부분을 찾아 고치도록 알려주는 보안 전문가랍니다.
화이트 해커는 민간 기업부터 정부, 군, 경찰까지 여러 분야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어요. 우리 생활 많은 부분이 사이버 세상과 깊게 연결되면서 사회적 중요성이 커졌어요. 해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올바른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화이트 해커 연합 '하루(HARU)'도 사단법인으로 출범했답니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대기업이나 온라인으로 대규모 금전 거래가 이뤄지는 은행 등에서도 화이트 해커에게 모의 해킹을 요청해요. 해킹 공격자가 바라보는 눈으로 시스템 안전성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서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같은 세계적 기업에서는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버그(시스템 오류)·취약점 등을 발견해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버그바운티' 제도도 운영해요.
화이트 해커는 누구보다 도덕성과 윤리의식, 책임감이 중요해요. 기술을 조금이라도 남용하면 바로 범죄의 길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많은 유혹이 찾아오죠. 기술을 공부하는 것 이상으로 법과 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세계적인 해킹 대회에서 우승하거나 버그바운티 포상을 받아 이름을 날린 화이트 해커 중에도 어린 시절 게임을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해킹에 발을 들인 사람이 많아요. 범죄자가 되느냐 당당한 사이버 파수꾼이 되느냐 기로에 섰던 셈이죠. 하지만 게임을 해킹하기 위해 코딩에 대해 공부하고 소프트웨어(SW) 작동 원리를 고민하면서 더 큰 재미와 보람을 느꼈다고 해요.
지금도 인터넷 검색으로 나오는 게임 해킹 방법은 모두 불법이에요. 해킹 툴을 함부로 내려 받아 설치하면 악성코드에 감염되거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죠. 최근 화이트 해커가 인기를 끌면서 생겨난 각종 사설 학원이나 증명서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해요.
정부에서는 화이트 해커를 미래 유망 인재로 여기고 다양한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기술은 물론이고 법·제도와 윤리교육이 함께 이뤄지죠.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차세대 보안리더 양성 프로그램(BoB)'이 대표적이에요. 고려대, 서울여대, 아주대, 충북대 등 정보보호 특성화 대학도 지정했답니다. 서울여대는 중·고등학생 대상 정보보호영재교육원도 운영해요.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