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5인승 전기자동차 '모델3'는 한번 충전으로 최장 345㎞를 달릴 수 있다. 전기자동차로는 최고 사양이지만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나 충전소 사이의 간격을 생각한다면 아직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전기자동차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적 발전은 이미 한계에 이른 반면, 자율주행이나 커넥티드카처럼 전기에너지가 필요한 기능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지쳐가는 전기자동차에 보다 강력한 힘을 줄 구원투수로 '그래핀 배터리'가 떠오르고 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그래핀 배터리
테슬라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묶음으로 사용하는 단순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전기자동차를 만들었다. 배터리를 개선해 매년 5%씩 충전용량을 늘리고 고속충전소를 만들어 40분 만에 80% 충전을 구현했지만 운행거리는 아직 400㎞ 안팎에서 머물고 있다.
한편 최근 테슬라에 도전장을 내민 피스커는 그래핀 배터리를 장착해 한번 충전해 최장 640㎞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전기자동차 '이모션'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시속 260㎞의 최고 속도를 자랑하는 이모션이 예정대로 출시된다면 세계 최초로 그래핀 배터리를 탑재한 상용차로 기록될 것이다.
이모션에 들어갈 그래핀 배터리는 스타트업 기업인 나노테크 에너지의 제품으로, 레이저로 그래핀을 가공해 부드럽게 휘어지도록 만든 슈퍼커패시터가 핵심이다. 슈퍼커패시터는 전기에너지를 빠르게 대량으로 저장해, 높은 전류를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장치다. 그래핀 슈퍼커패시터가 전기자동차의 주행거리와 가속능력을 어디까지 끌어올릴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기를 저장하는 그래핀 빌딩
우리나라 연구진도 그래핀을 이용한 슈퍼커패시터를 선보였다. 2015년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단장 이영희 성균관대 교수)은 빌딩형태의 3차원 탄소나노튜브-그래핀 구조체를 만들어 높은 에너지밀도를 가지면서 고출력을 유지하는 슈퍼커패시터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수용액 속에서 탄소나노튜브에 고분자 물질을 흡착시키고 여기에 그래핀 구조가 들어 있는 산화흑연을 반응시켜 그래핀 층 사이에 탄소나노튜브가 배치된 3차원 구조물을 만들었다. 다시 200℃ 이상 가열해 고분자물질만 제거하면 탄소나노튜브-그래핀의 3차원 빌딩구조만 남게 된다.
탄소나노튜브-그래핀의 3차원 빌딩구조에는 이온이 드나들 공간이 많고 이온을 흡착할 표면적도 넓어서 보다 많은 전기를 저장하고 빠르게 내보낼 수 있는 슈퍼커패시터를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현재 20㎛까지 구현한 두께를 100㎛까지 늘리면 실제 전기자동차에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았다.
◇나노주형으로 만든 3차원 그래핀
2016년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 연구단(단장 유룡 KAIST 교수)은 제올라이트 주형과 란타늄 촉매, 나노주형합성법을 활용해 마이크로 다공성 3차원 그래핀 합성에 성공했다. 원자 1개의 두께로 이뤄진 2차원 평면구조인 그래핀을 나노주형이라는 일종의 거푸집을 이용해 그래핀의 강점을 고스란히 살린 3차원 구조물을 만들어 냈다.
연구진은 제올라이트 주형에 있는 미세한 기공에 란타늄 양이온을 촉매로 주입해, 기공 안에 있는 탄화수소기체의 탄화온도를 낮춰 원활한 탄소 증착을 유도한 것이 연구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탄소 결정 구조물이 견고하게 형성되면 염산과 불산으로 제올라이트 주형을 녹여내 3차원 그래핀만 남겼다.
이렇게 만들어 낸 3차원 그래핀을 전지의 음극재로 시험 적용한 결과 약 100㎃h 수준의 정전용량을 약 300㎃h까지 끌어올렸다. 전기자동차나 수소자동차에 쓰일 대용량 배터리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연구는 주형재료인 제올라이트가 매우 저렴하고 산 용액으로 주형을 제거하는 공정도 단순해 대량생산과 상용화의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고 있다.
전 세계에 대두되고 있는 에너지 및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자동차가 미래의 새로운 운송수단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이때, 나노기술 기반 전기자동차 상용화는 미래 자동차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요한 키(key)다. 미래의 자동차를 힘 있게 움직여 나갈 그래핀 배터리의 활약을 기대해 보자.
글:장익준 과학칼럼니스트(국가나노기술정책연구센터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