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Product Placement)을 직역하면 '제품 배치'지만 실제로는 광고용어로 쓰인다. 영화나 드라마 작품 속에서 쓰인 소품용 제품이 여과없이 관객들에게 노출돼 간접홍보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한다.
◇ PPL, 주인공 감정이입하는 관객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어필
영상광고는 작품 시작 전후의 광고나 중간삽입 광고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본격적인 광고 시간 못지않게 PPL 광고가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의 중요 장면에서 중간광고가 나오면 강한 불만을 표현한다. 하지만 PPL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직접적인 노출을 시도하지만 않는다면 중간광고처럼 작품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데다 주변 소품으로 인식되면서 친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가 드라마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면 작품 속 소품들이 마치 자기 것처럼 느끼게 되는 심리도 PPL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인기 드라마의 PPL이 유독 자극적인 이유는 그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액세서리를 하고픈 욕구가 강력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배우 김남주는 드라마 속 모든 스타일이 팔려나가는 이른바 '완판의 여왕'으로 유명하며 박신혜, 신민아, 고준희 등 패셔니스타로 꼽히는 배우들도 '완판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 드라마에서 먹으면 나도 바로 먹고 싶어져
PPL은 보통 의류나 주얼리, 화장품 등에서만 효과를 발휘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극 전체에 놓인 소품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무제한적인 영역을 포괄할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 속 음식은 즉각적이며 강한 광고효과를 낸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유독 짜장면을 비롯한 중국음식을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 순간 시청자들은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면서 전국 중국음식점의 매출을 상승시킨다.

대표적인 야식메뉴로 꼽히는 치킨도 마찬가지다. SBS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국내는 물론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치맥 열풍'을 불러일으켜 월드컵 이후 가장 큰 치킨집 매출의 공신이 된 작품이다. 드라마 방영 당시 국내에서는 시작 시간에 맞춰 치킨과 맥주를 주문하는 가정이 많았다. 중요한 것은 치킨을 찾는 것이 시청자 개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그런 욕구를 가지게 됐다는 점이다.
최근 tvN드라마 '도깨비'에서도 치킨 PPL의 흔적은 나타났다. 유인나(써니 역)가 극 중 작은 치킨집을 운영하다가 일순간 BBQ치킨 체인점 사장으로 등장했다. 또 공유(도깨비 역)가 검(劍)을 뽑으면 무(無)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치킨무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이처럼 강한 PPL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치킨 성지'를 찾아다니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도깨비에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먹는 장면은 더욱 인상적이다. 등장인물들은 거의 창가에 앉는데, 카메라는 실내에서 직접적으로, 실외에서 유리창을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의 미세한 변화를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실외에서 바라본 카메라는 이곳이 서브웨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게 만들었다.
◇ 지나친 PPL, 거부감 들 수밖에 없다
PPL은 자연스러운 소품으로 등장해 완벽한 광고효과를 가져다주는 간접광고의 미학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근 종영된 OCN드라마 '보이스'와 2016년 상반기 화제작 '태양의 후예'다.
보이스에서는 손은서(박은수 역)와 예성(오현호 역)이 극의 흐름과 맞지 않게 갑자기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러가는 장면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장면에서 PPL은 중간광고처럼 극의 흐름을 차단해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한 까닭에 오히려 독이 됐다.

태양의 후예도 이와 마찬가지 성격을 띤다. 'PPL의 후예'라는 불명예스러운 수식어를 받을 정도로 눈총을 받았다. 한국인삼공사(정관장)나 쿠쿠, 서브웨이, 삼성전자(삼성페이), 현대자동차 등의 기업들이 제공한 다양한 PPL이 등장하면서 지적을 받았다. 특히 제품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홈쇼핑식 영상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시청자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 속 PPL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노출된다는 점이다. 시나리오 속에 PPL을 어떻게 녹여내는가에 따라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갈라진다는 점과 함께 불호의 경우에도 강력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청자들에게 톡톡히 회자된다는 점이 있다.
◇ PPL, 왜 필요한가
현재 영화나 드라마 속 PPL은 일상적 수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만약 드라마에서 PPL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PPL은 상품의 종류와 작품 속 노출빈도에 따라 광고단가가 결정되는데 보통 수천만원에서 십억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이는 주연배우 섭외나 해외 로케이션 촬영 등 작품 제작비로 쓰이면서 영상퀄리티를 높인다. 제작비가 한정된 상황에서 PPL이 없다면 송중기 대신에 다른 무명 배우를 주인공으로 만나야할 수도 있고 로케이션 장소는 현저하게 줄어들 수 있다. 정말 돈 들여 만든 멋진 장면은 작가의 시나리오 속에서만 존재할 수도 있다.
과거 시대상을 상징하는 물품으로서 드라마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음료나 과자류, 의류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물품들이 등장해 시청자들의 공감대와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 극적 효과를 높였다. 또 과거 삶을 유추해볼 수 있는 사료(史料)로서도 가치를 갖게 됐다.

이밖에도 PPL은 한류 콘텐츠의 부가상품으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SBS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유커들의 치맥 페스티벌을 이끌어내는 등 치킨을 한류상품으로 만들어낸 바 있다. 또 사극이나 영화, TV드라마의 세트장이나 실제 촬영장소들도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새로운 관광명소를 만들어내 지역상권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메밀꽃밭 배경을 제공했던 전라북도 고창군에서는 메밀밭을 찾을 관광객들을 위한 여행코스를 마련하고 있다. 또 '서울배경 독립영화 제작지원', '부산 로케이션 영화 지원' 등 본격적으로 촬영장소에 대한 지원을 하기도 하며 각 지역의 영상위도 지역 촬영을 반기고 있다.
TV드라마나 영화 속 PPL은 과하면 지적의 대상이 되지만 잘하면 다양한 역할로 작품의 질과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된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옷을 입고 같은 음식과 같은 장소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가 다 같은 것이다. 색안경을 잠시 벗고 PPL의 세계를 정확히 보자.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
박동선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dspark@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