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으러 자택에서 출발해 서초동 검찰청까지 간 길은 테헤란로였다. 박 전 대통령의 핵심 비전인 창조경제 정책 아래에서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은 테헤란로가 그의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 됐음은 보통 아이러니가 아니다.
관가에선 벌써 창조경제란 단어가 사라졌지만 정책의 온기는 테헤란밸리를 바꾸고 있다. 한동안 엉성하던 이곳이 다시 벤처기업들로 채워지고 있다. 2, 3년 새 부쩍 늘어난 '공유 오피스'들이 벤처를 끌어들이는 큰 자석 역할을 하고 있다.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약 4㎞의 중앙로와 114개 옆길로 이뤄진 이 밸리에는 현재 1500개가 넘는 벤처기업이 포진하고 있다.
코워킹, 크리에이티브 팩토리, 워크스페이스 등의 기능성을 강조한 공유 오피스가 늘어 가며, 벤처가 몰려드는 선순환 구조를 보이고 있다. 창조경제 정책이 대기업을 끌어들인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는 빗나갔지만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이 몰리는 이곳에선 기능하고 있는 모습이다.
비단 이곳만이 아니다. 서초역에서 교대역을 거쳐 강남역에 이르는 도로변, 양재역에서 강남역에 이르는 도로변에 있는 대형 건물들의 지하는 공유 오피스의 세계이자 벤처들의 보금자리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있는 한 바이오 벤처기업의 초빙 대표로 있다가 테헤란밸리로 나와 최근 선릉역 근처에서 창업한 이정일씨는 “우선 교통이 편리해 거래처와의 원활한 소통은 물론 거래처의 다양화를 꾀할 수 있다”면서 “임대료도 생각보다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테헤란밸리에서는 두 개의 대형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하나는 오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옛 르네상스호텔에 지어지고 있는 지상 37층의 쌍둥이 럭셔리 복합 빌딩이다. 테헤란밸리 한가운데에 첨단 비즈니스 인프라와 문화·상업 공간이 생긴다. 또 하나는 현대차가 삼성동의 한국전력공사 옛 부지에 짓고 있는 지상 105층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다. 2021년이 완공 목표다. 테헤란밸리가 전 세계에 유례없는 완벽한 생태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국가가 조성한 20만평 부지에 1100개 기업이 입주해 7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콤팩트 시티 판교와는 다른 형태의 미래형 혁신 클러스터다.
일본은 지금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바이오 기술을 융합시켜 도쿄를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아베 신조 정권이 임기까지 늘려 가며 승부를 건 도쿄 리빌딩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총리가 주관하는 관·민 빅데이터 사령탑 설치, 규제 샌드박스(모래밭에서 아이들이 마음대로 놀 듯 규제가 없는 지역) 지정, 국민의 평생교육 실시 등 4차 산업혁명 성공책을 다듬고 있다.
정치 대격변기에 있는 우리나라는 5월 초 새 정부가 출범한다. 준비 없이 시작하는 새 정부는 시행착오를 적지 않게 겪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모든 대선 주자와 그 참모들이 이구동성으로 4차 산업혁명과 경제 활성화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안심되는 대목이다.
새 정부의 임기는 2022년까지다. 테헤란밸리 생태계가 완성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되살아나고 있는 테헤란밸리를 규제 없는 특구, 4차 산업혁명의 국민 교육장, 5G의 무한 실습장 등으로 한층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면 정부의 가장 성공한 경제 정책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분명 그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어머니 교육, 꿈나무를 키우는 과학재단, 4차 산업 미디어 등을 구상하는 사람들, 벌써부터 강남관광콘텐츠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사람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강남포럼을 꾸리는 사람들로 테헤란밸리는 지금 와글와글 법석이다.
![[곽재원의 Now&Future]4차 산업혁명과 2022년 테헤란밸리](https://img.etnews.com/photonews/1703/936500_20170324152701_474_0001.jpg)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