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데이터' 가치가 조명 받는다. 데이터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 주요 기술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얼마나 데이터를 많이 보유·분석하느냐가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양질의 데이터 창고는 정부다. 각국 정부는 수 십 년간 쌓아온 데이터를 보유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는 정부가 보유한 공공데이터 개방에 적극적이다. 이를 활용해 자국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돕는다.
◇'정부3.0'이 촉발한 공공데이터 개방
2013년 정부는 '정부3.0' 비전을 발표하고 '투명한 정부' 기조 아래 정부가 가진 정보와 데이터를 국민에게 개방·공유하기 시작했다.
'공공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데이터 개방을 유도했다. 공공데이터법은 국회통과 3개월 만에 시행됐다. 법이 지체 없이 시행되자 데이터 개방이 급증했다. 법 시행 3년 만인 지난해 공공데이터 개방 건수는 2만여건으로 법 시행 전보다 3.9배 늘었다. 2015년 OECD 공공데이터 개방지수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1점만점에 0.98점으로 만점에 가깝다. 단기간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개방' 집중 정책이 낳은 한계
데이터 개방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여전히 데이터 품질과 활용 측면에서 미흡하다. 여전히 세계 주요 지표에서 국내 데이터 개방은 한계를 드러낸다.
'오픈 데이터 바로미터(Poen Data Barometer)'는 W3C 재단이 발표하는 국가별 오픈 데이터 정책 평가 지표다. 준비도, 구현, 영향력 세 가지 관점에 기초해 순위를 매긴다. 2015년 기준 1위는 영국이다. 영국은 세 관점 모두 100점을 기록했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덴마크가 뒤를 이었다. 한국은 총점 71점을 기록, 8위에 올랐다. 17위를 기록했던 1년 전에 비해 순위가 크게 올랐다. '개방'이 주요 척도인 '준비도 측면'은 95점을 기록, 영국과 근접한 수준에 올랐다. 그러나 구현(64점)과 영향력(58점) 등 실제 실행 측면 점수는 영국 절반 수준에 머문다. 데이터 개방은 증가했지만 활용이 더디다.
또 다른 오픈 데이터 평가 지표인 '오픈 데이터 인덱스' 순위(2015년) 역시 1위는 영국이 차지했다. 한국은 23위를 기록했다. 28위를 기록한 전년보다 올랐지만 주요 국가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수준이다. OECD 지표만으로 국내 데이터 개방 지수가 최고 수준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여 준다.
◇개방 넘어 '품질'과 '활용' 단계로
'2016년 정보화통계집'에 따르면 조사 기업 가운데 공공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업은 12.1%였다. 87.9%는 공공데이터를 서비스 등에 활용하지 않았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지 않는 이유로 76%가 '필요한 공공데이터가 없다'고 답했다. 20.9%는 '공공데이터 확보 방법을 모른다'고 언급했다.
공공데이터가 기업에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품질과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현재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 2만1953건(2017년 3월 기준) 가운데 기업이 바로 사용 가능한 오픈 API형태는 10%(2225건)에 불과하다. 90%가량이 파일데이터(1만9694건)다. 파일데이터는 대부분 엑셀 파일 등의 형태로 재가공이 필요해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표준데이터도 34건에 불과하다.
공공데이터를 포함한 오픈데이터 품질을 흔히 5단계로 나눈다. 국내 개방된 공공데이터는 저품질(1,2단계)에 해당해 품질 개선 없이 데이터 활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공공데이터 품질 개선을 우선순위에 두고 정책을 추진 중”이라면서 “앞으로 바로 사용가능하고 쓸 만한 데이터가 많아지도록 조율하겠다”고 말했다.
◇데이터 공급자 위주 정책 탈피…생태계 조성 동반해야
국내 공공데이터 개방 정책이 '정부 3.0'과 시작을 함께하다보니 정권이 바뀌면 소홀해진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공공데이터를 비롯한 오픈데이터 정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 기본 정책이라고 제언한다. 지금보다 데이터 개방과 품질 향상,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생태계 조성 등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공데이터전략위원회 법제도전문위원장을 맡은 권헌영 교수(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는 “공공데이터를 많이 개방했지만 공급자 역할만 주로 하고 민간 시장 이해도가 떨어졌다”면서 “민간에서 데이터를 잘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와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공공과 민간데이터를 결합한 서비스 모델을 발굴하고 이를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공데이터 개방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오픈데이터 전문기관 '오픈데이터인스티튜트(ODI)'를 만들었다. ODI는 영국 정부 공공데이터뿐 아니라 민간, 시만단체 등 오픈데이터 사용과 활용, 스타트업 창업 등을 지원한다. 영국 정부가 다루지 못하는 부분을 ODI가 담당하면서 영국 내 오픈데이터 생태계 마련에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양정식 투이컨설팅 이사는 “오픈데이터는 광범위해서 정부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라면서 “민관협의가 중요하다. 정부 공공데이터가 가치 있게 사용되고 많은 스타트업이 만들어지려면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체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