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 호랑이를 만든다는 뜻이다. 거짓말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진실로 둔갑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대통령 탄핵에 이어진 조기 대선 국면이 가짜뉴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후보를 헐뜯는 악의적 내용의 가짜뉴스가 생기는가 하면, 교묘하게 진짜 뉴스처럼 포장돼 여론을 호도하는 것까지 지능화됐다. 후보 진영은 만회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입기도 한다.
한 정당 대선후보 측 관계자는 “과거엔 찌라시(비공식 정보지)가 주로 유포됐지만 최근엔 실제 뉴스처럼 편집된 가짜 뉴스가 퍼지면서 유권자 판단을 흐리고 있다”며 “모니터링 인력을 늘려 감시를 강화하고 있지만 SNS로 빠르게 퍼져 대응에 한계가 있고 제작자를 특정하기가 어려워 고소·고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돌입 앞두고 가짜뉴스 창궐
유력 대선 후보였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선 출마가 유엔법 위반이라'는 가짜뉴스에 피해를 겪었다. 반 전 총장은 “인격살해와 가짜 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는 말과 함께 불출마를 선언했다.
각 당이 대선후보를 다음주까지 결정하고 곧바로 선거운동에 들어갈 채비를 하면서 가짜뉴스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짜뉴스는 넓게 보면 전문 기사 형태부터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유통되는 루머도 포함한다. 각 당 대선후보 캠프도 기사뿐 아니라 반복 유통되는 악의적 루머까지 모니터링 대상에 포함시켜 대응에 나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는 '가짜뉴스'에 가장 많이 노출됐다.
최근 불거진 치매설부터 시작해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을 통해 이뤄진 신연희 구청장 음해성 글, 김춘택 교수라는 신원불명자의 음해성 인터넷 게시글에 시달렸다.
이와 더불어 △집안 내력(나주 남평 문씨 빨갱이 집안) △엘시티 비리 주범 △문재인 정부 예비 내각 내정 △위키백과 문서 훼손 △아방궁 호화 주택 △최순실 게이트 음모론 △비자금 20조원 관련 영상 △금괴 1000톤 보유 관련 영상 △문재인 비서실장 김정일 편지 발송 △특전사가 아닌 행정병 출신 등 수많은 가짜뉴스가 그를 괴롭혔다.
문 후보 캠프는 가짜뉴스가 하루가 다르게 덩치를 불리자 대책단을 꾸리고 정면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한정된 인력탓에 중과부적이다. 문캠프 관계자는 “가짜뉴스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부터 고민”이라며 “인터넷 허위사실 게시나 유언비어 유포 게시물이 기사형식이 아니니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인터넷 기사가 워낙 많으니 일일이 모든 보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어려움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도 가짜뉴스 주요 표적이다. 민주당 표를 잠식하기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밀약 맺었다거나 18대 대선 당시 안랩이 박근혜 후보를 지원했다는 루머가 주를 이룬다. 또 안랩이 보안관제를 맡은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통해 부정투표가 이뤄졌고 안 후보는 대선 직후 도미해 이를 방조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현웅 국민의당 디지털소통위원장은 “뉴스형태로 정형화된 형태가 아니더라도 SNS를 통해 무수한 루머와 찌라시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안희정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도 상황은 비슷하다. 안 후보 30년 지기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부원장으로 있는 '여시재 싱크탱크설'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보수 성향 인사가 대거 포진한 여시재가 안 지사 '대연정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 후보가 여시재를 등에 업고 우편향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는 루머도 곁들여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도 허위 정보에 시달렸다. 2007년 열린우리당 분당 당시 이 후보가 탈당했고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괴롭혔다는 가짜 뉴스가 지속적으로 올라왔다. 이 시장은 2005년 가입해 현재까지 탈당한 적이 없다는 당적증명서를 공개했지만 거짓소문은 아직도 SNS에 떠돈다.
◇인신 공격, 도덕성 등 감정적 흠집에 초점
가짜뉴스 피해 빈도는 대체로 지지율에 비례해 나타났다. 문재인 후보는 공식홈페이지(www.moonjaein.com) 내 '허위사실 신고센터'를 열어 유언비어 시민 신고를 받았다. 지난 2일 공식 오픈 후 18일 만에 5000건이 넘는 시민 제보가 접수됐다. 하루 평균 200건이 넘는 수치다. 29일 기준 누적 7000건 이상 넘게 신고됐다. 이 가운데 문캠프가 주요 관리 대상으로 삼는 가짜뉴스는 계속된 해명에도 반복되는 30여개로 압축됐다.
안철수, 안희정 후보 관련 가짜뉴스도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각 캠프별로 10여개 내외 가짜뉴스에 초점을 맞춰 법적 대응에 들어간 상태다. 이재명 후보 관련 가짜뉴스도 지난해 말 지지율 급상승한 이후 본격 유포되기 시작했다는 게 캠프측 분석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 한 관계자는 “지지율이 상승하면 반대 측 방해공작도 수위가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대선 막바지까지 가짜뉴스 공격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가짜뉴스는 인신공격, 색깔론, 도덕성과 관련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문재인 후보는 개인자산은닉, 아들 취업 비리 등 도덕성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가짜뉴스에 많이 노출됐다. 문 후보 강점으로 평가받는 '깨끗한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그만큼 많은 셈이다. 또 대북관을 의심할 수 있는 내용이 뒤를 이었다.
안철수, 안희정 후보 관련 가짜 뉴스는 주로 '정체성 흔들기' 목적이 많았다. 두 후보 모두 '이명박 아바타설' 등으로 곤욕을 치렀다.
사진·편집 기술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것도 가짜뉴스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 기존 가짜뉴스가 SNS를 통한 루머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엔 사진 합성, 가짜뉴스 편집 앱 등을 이용해 진위를 가리기 힘들 만큼 진화했다. 여기에 SNS를 타고 빠르게 전파되면서 파급도 과거 대비 몇 갑절 빨라졌다.
한 언론단체 관계자는 “국민 정치 견해가 양분되면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집단을 맹목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제작해 퍼뜨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사진을 조작하거나 기사 형태로 제작해 신뢰도를 높이는 시도도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등 공개 플랫폼은 어느 정도 모니터링이 가능하지만 메신저 형태 SNS는 게이트키핑이 어렵다”며 “가짜뉴스를 거를 수 있는 장치와 구조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