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오염이 심각하다. 최근 들어 '미세먼지'가 더 극성이다. '미세먼지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다. 잿빛 하늘, 마스크를 한 모습이 일상화 됐다. 갈수록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손으로 꼽아야 한다.
미세먼지 주의보는 올해 들어 85차례 내려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 수준이다. 3월 서울의 미세먼지농도는 평균 38이다.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인 25를 만족하는 날은 7일에 그쳤다.
지난해 단 하루도 없었던 초미세먼지 주의보도 올해 3번째 발령됐다. 초미세먼지는 지름 2.5㎛ 이하 크기 먼지다. 호흡 시 들이 마시면 코털과 기관지 섬모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나 뇌에 침투할 수 있어 미세먼지보다 더 위험하다.
미국 환경보건단체 보건영향연구소(HEI)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29㎍(마이크로그램)/㎥으로 세계보건기구 권장 기준(10㎍/㎥)의 3배나 된다. 초미세먼지 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터키(36㎍/㎥) 다음으로 높고, 증가폭은 5년 새 4㎍/㎥으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의 공기 질이 세계 주요도시 가운데 최악이라는 기록은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청명하고 높은 하늘이 자랑거리였던 우리나라가 왜 이런 모습이 됐을까. 미세먼지는 어떻게 어디까지 대응할 수 있을까.
OECD 2016년 보고서 '더 나은 삶 지수' 조사 환경부문 가운데 대기오염 수치는 우리나라가 회원국과 추가 조사대상국을 포함한 38개국 가운데 38위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예일대와 컬럼비아대가 공동 조사한 '2016 환경성과지수(EPI)'에서 우리나라 공기 질은 세계 180개국 가운데 173위, 특히 초미세먼지 부문은 중국과 같은 174위로 나타났다.
미국보건영향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10만명당 미세먼지 사망자는 27명이었다. 일본 17명, 미국 18명, 캐나다 12명으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치다. OECD는 40여년 뒤인 2060년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한국의 조기사망률과 국내총생산(GDP) 손실 비율이 회원국 중 1위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세먼지 등으로 인한 우리나라 대기오염 피해는 연간 10조원을 넘는 규모로 추산된다. 2060년에는 20조원에 달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도 있다. 소비와 산업 활동, 삶의 질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을 감안하면 피해는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가장 큰 원인은 중국발 황사다. 국내 미세먼지 오염원의 50%를 차지한다. 국립환경과학원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을 뒤덮은 초미세먼지의 약 80%는 중국에서 날아왔다. 중국에서 발생한 스모그가 북서풍을 타고 와 우리나라 대기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중국 칭화대와 베이징대,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등으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진은 3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2007년 한 해 동안 중국에서 유입된 미세먼지로 한국과 일본에서 조기 사망한 사람의 수가 3만900명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주변에 자주 형성되는 대륙성 고기압으로 인한 대기정체도 문제다. 비가 오면 미세먼지를 씻어낼 수 있지만 강수량이 적은 겨울과 봄에는 세정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인구밀도가 높고 도시화·산업화가 고도로 진행되면서 단위 면적당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에너지 사용량 증가는 미세먼지 배출량으로 이어진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2011년부터 크게 늘어나고 있다. 주요 오염원은 석탄·석유 등 화석연류를 태울 때 생기는 매연, 자동차 배기가스,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날림먼지, 공장 내 분말형태의 원자재, 부자재 취급공정에서 발생하는 가루성분, 소각장 연기 등이다.
최근에는 디젤차량이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오염원으로 지목되고 있다. 노후 디젤차는 발암물질인 질소산화물(NOx)을 다량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세먼지는 면역이 생기지 않고 치료법도 따로 없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으면 외출을 삼가하고 불가피하게 집을 나설 경우에는 방진마스크를 쓰는 것이 최선이다. 마스크 외에 구강 세척제도 유용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실내에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거나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하기 위한 건조기 사용이 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 대책은 미온적이다. 날씨와 환경 탓만 하고 있다. 강력한 오염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지난해 6월 정부는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 대책은 고등어나 삼겹살 등 직화구이 저감시설을 지원하고 노후 경유차 수도권 운행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경유 택시를 도입하고 30년 이상된 노후 화력발전소 10기를 폐지하겠다는 방안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안은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실요성 있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분석한다.
더구나 정부는 오는 2029년까지 현재 석탄화력 발전용량의 70%에 해당하는 20기를 더 짓기로 했다. 환경단체들은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면서도 석탄화력 발전소를 증설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미세먼지 예보등급 기준이 WHO과 비교해 너무 관대한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나쁨' 등급 기준이 81㎍/㎥이다. WHO는 50㎍/㎥부터 '나쁨'으로 분류한다. 기준이 이렇다 보니 국민들은 미세먼지에 둔감해진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14년부터 중국 발 미세먼지 데이터 수집에 나섰다. 하지만 3년이 넘도록 중국 발 미세먼지 발생원인 등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중국내 미세먼지 데이터 분석대상을 기존 35개 지점에서 74개 지점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중 공동으로 베이징을 포함한 화북지역 미세먼지 발생 경로와 원인을 분석할 계획이다.
미세먼지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국과 공조가 필요하다. 이에 1999년부터 한·중·일 3국 장관회의를 통해 미세먼지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선언적인 의미일 뿐이다.
유럽에서는 장거리 대기오염 물질이동에 따른 오염물질 확산의 주범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동북아시아에는 적용할 수 있는 국가 간 협약이 없다.
전문가들은 한·중·일 3국의 미세먼지 정책을 파악, 국제협력을 통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3국간 대기환경 관련 법적 효력이 있는 기구를 설치하고 나아가 아시아 전체가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정부·기업·도시 간 연계 협력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김한식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