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이요? 못합니다. 그럴 여력이 어딨습니까?”
하루하루 사업을 이어가기 바쁜 중소기업 이야기가 아니다. 매출 수천억원대의 자동차 부품회사 개발 담당 임원 이야기다. 미래 자동차 기술이 쏟아지는데, 연구개발도 하지 않고 어떻게 생존한다는 것일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고백'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것이 국내 자동차 부품기업 다수의 현 상황이라는 점이다.
'여력이 없다'는 것은 실적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현대차 비계열사 부품회사 450개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2015년 이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0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비 계열사 영업이익률은 2010년과 2011년을 제외하고는 계속 3%대를 유지했다. 10%가 넘는 글로벌 부품회사 영업이익률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달 31일 공시된 주요 부품기업 사업보고서에서도 매출대비 연구개발 비중도 매우 낮다. 적게 벌고 적게 투자하는 셈이다. 돈이 없어서 연구개발을 못한다는 말이 괜한 핑계가 아니었다.
이는 공급회사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낳은 결과다. 현대·기아차 상당수의 1~2차 협력사들이 매출의 80~90%를 현대·기아차에 의존한다. 이렇게 되면 가격 결정권은 필연적으로 현대·기아차가 갖게 된다. 부품 가격을 깎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꽤 효과적이었다. 적어도 2015년까지 현대기아차는 저렴하고 품질 좋은 부품을 통해 승승장구했다. 이를 뒤집어 보면, 부품업체들의 낮은 이익을 바탕으로 현대·기아차가 성장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부품에는 현대·기아차의 투자가 있었다. 계열사가 아닌 부품회사들마저 개발부터 생산·품질관리에 이르기까지 현대차그룹과 한 몸이 돼 움직였다. 연구개발도 현대차의 몫이었다. 현대차가 기본 콘셉트부터 장비까지 지원해 주는 식이었다. 현대차가 이러한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가장 빨리 부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 구조에서는 부품업체들도 가격을 올려달라고 요구할 처지가 못 됐다. 부품업체 입장에서도 연구개발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다. 낮은 이익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했다. 친환경차,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등 미래자동차에는 새로운 선진 부품이 필수적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연구개발 비중을 늘리겠다고 하고, 심지어 경쟁사와도 손을 잡을 정도다. 지금까지 '독자 연구개발을 할 여력조차 없는 구조'의 결과물로 발전해온 한국 자동차 산업은 대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협력사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첨단 기술들이 있다면 날개가 될 텐데, 뿌리지도 않은 씨앗에서 열매를 맺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대차 부담은 갑절로 늘어났다. 부담이 큰 만큼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야 하는 현대차는 가격에 더욱 인색해졌다. 부품회사들은 영업이익이 조금이라도 올랐다 싶으면 가격협상하자는 요구부터 한다고 하소연한다.
이제는 낮은 영업이익으로 연결된 수직계열화의 고리를 끊어야 할 시점이 왔다. '각자도생'해야 할 시점이다. 현대·기아차는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외부 역량을 활용하기 위해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늦은 감이 있으나,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폐쇄 구조의 밑바탕이 됐던 '낮은 이익'에 대한 정책도 바꿔야 한다. 당분간은 현대·기아차에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다. 말이 쉽지 '실천'은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한다. 그래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미래를 위해 나아가겠다면, 그 첫걸음은 협력사들의 이익을 챙겨주는 것이다. 그래야 부품회사들이 좋은 품질의 부품을 공급하는 진정한 '협력사'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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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경 자동차 전문기자 okm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