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볼 수 있었던 장소도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되면 관광명소가 된다. 영화와 드라마는 관객들에게 꿈을 심어주는데, 감정이입해 관람하는 관객들은 드라마 촬영지에 가보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가지게 된다.
일상에서 스쳐간 공간이라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뭔가 새롭고 환상적인 공간으로 비치기 때문에, 잘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그 무엇보다도 강한 홍보대사가 된다.
서울영상위원회, 부산영상위원회, 인천영상위원회, 전주영상위원회, 청풍영상위원회 등 각 지역의 영상위원회가 지역에서의 영화 촬영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단순한 홍보 차원을 넘어 관광객 유발효과가 무척 크기 때문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은 잘 갖춰진 교통편으로 인해 서울 시내 각 지역을 자유롭게 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시내의 장소는 오히려 내국인들에게는 관광명소라고 여겨지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냥 스쳐지나가던 곳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면 꿈의 장소가 된다.
◇ '음란서생', '궁', '청풍명월', '도깨비'의 운현궁
운현궁,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북촌 한옥마을과 가회동, 남산골 한옥마을 등은 사극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고, 시대극과 현대극으로도 모두 사용되는 장소이다. 궁궐 근처는 내부뿐만 아니라 주변 동네까지 모두 촬영의 배경 장소가 된다.

운현궁은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집으로 운현궁 양관이 등장하면서 핫한 장소가 됐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사가로, 양관은 본래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의 저택이었으나 1917년 이준이 죽은 뒤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의 둘째 아들 이우가 집을 물려받았다. 도깨비(공유 분)와 저승사자(이동욱 분)이 집문을 열지 않고 다니다가 지은탁(김고은 분)을 만나 문을 열려고 하는데 비밀번호를 몰라 당황하는 신이 양관에서 촬영됐다.
도깨비 집 내부는 단 한 번의 신 이외에는 세트장에서 촬영됐는데, 오히려 양관의 내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다. 시대극과 사극으로 돋보일 것 같은 궁궐이 현대극으로도 빛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장소든 촬영 콘셉트에 따라 오픈 세트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영화 '음란서생'에서는 조선의 뒷골목 풍경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음란도서를 집필하는 유학자(한석규 분)과 춘화를 그리는 금부도사(이범수 분), 왕 몰래 바람을 피우는 왕비(김민정 분)의 이야기가 운현궁에서 펼쳐졌다.

19세기적 왕자(주지훈 분)와 21세기적 평민 여성(윤은혜 분)이라는 독특한 커플의 사랑을 보여준 드라마 '궁'은 운현궁을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중적인 매력을 지닌 장소로 만들었다.
반면에 영화 '청풍명월'은 운현궁이 어둡고 무거운 음기를 머금은 장소로 표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처럼 같은 장소에서도 영화와 드라마에서 어떤 장소로 활용됐느냐에 따라 그 느낌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 '더폰', '육혈포 강도단', '아테나', '전우치', '아이리스'의 청계천
청계천은 영화와 관계없이 관광명소이다. 가족과 연인이 나들이하기 좋은 장소인데, 접근하기 좋은 장소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주요지역으로 나왔을 경우 그 의미는 더 커질 수 있다.
청계천은 도심의 고층빌딩 사이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위한 거대 세트장을 꾸며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대적인 공간이 낭만적인 공간으로 승화됐는데, 작품 속에서는 더욱 아름답게 표현된다.

영화 '더폰'에서 고동호 역을 맡은 손현주는 영화속 촬영지인 청계천에서 관객수 100만 돌파 프리허그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한상준(주진모 분)과 제니(김아중 분)이 태평로 인근 분수대 계단 근처에서 병맥주를 함께 마셨다. 영화 '전우치'에서 화담(김윤석 분)을 만난 전우치(강동원 분)가 서인경(임수정 분)을 안고 떨어지면서 “여기가 내가 죽을 자리인가?”라고 말한 곳도 청계천이다.

영화 '육혈포강도단'은 청계천 도로에서의 도심 속 질주를 보여줬고, 드라마 '아이리스'와 '아테나'에서도 청계천을 중요한 장소로 활용했다. 청계천을 거니는 수많은 시민들은 또 다른 영화나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다.
◇ 홍대 카페거리와 홍대 로드숍거리
청춘의 상징인 홍대 카페거리와 로드숍거리가 가진 지역의 개성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더욱 돋보이고 있다. '쩨쩨한 로맨스', '시라노: 연예조작단', '이태원 살인사건' 등 영화는 카페거리에서 자주 촬영됐고, '메리는 외박중', '스타일', '내 이름은 김삼순' 등 드라마는 로드숍거리에서 많이 촬영됐다.

홍대 거리의 곳곳에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의 촬영장소라는 표시를 자주 볼 수 있는데, 활기차고 번화한 분위기를 가진 다양한 문화가 섞여있는 공간이기에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작품의 장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서울시내를 다니다보면 크고 작은 촬영 현장과 마주할 수 있다. 그냥 스쳐갈 수도 있지만 잠시 시간을 내 바라본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다시 만날 수도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사는 우리, 어쩌면 우리도 그곳에서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