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상 최대 호황기를 지나고 있는 정유·석유화학업계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필요한 투자는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기업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했고 금액도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5일 주요 정유·석화 기업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대다수 기업 R&D 투자비중이 수년째 매출 대비 1%선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4사 가운데서는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R&D에 업계 최대인 1453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전년 투자금액인 1654억원 대비 12.2% 감소한 수치다. GS칼텍스는 전년 대비 7.6% 증가한 497억원을 썼다.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는 같은 기간 각각 117억원, 46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4사 모두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1%를 넘지 못했다. SK이노베이션이 0.37%, GS칼텍스가 0.21%를 기록했다. 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가 각각 0.1%, 0.04%로 뒤이었다. 최근 3년간 투자금액과 비중은 눈에 띄는 변화 없이 소폭의 등락만 거듭했다.
석화부문에서는 지난해 업계 최대 영업이익을 올린 롯데케미칼이 636억원을 투자했다. 전년 527억원 대비 20.7% 증가한 수치지만 매출 대비 비중은 0.48%에 불과했다.
두 업종 통틀어 LG화학 R&D 투자규모가 가장 컸다. 지난해 전년 대비 36.7% 증가한 6780억원을 투자했다. 이는 매출 대비 3.28%에 해당한다. LG화학의 최근 3년간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2.26%, 2.75%, 3.28%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우리 정유, 석화업계 R&D 투자는 해외 기업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진다. 바스프, 다우케미컬 등 글로벌 석화기업의 지난해 매출 대비 R&D 투자액 비중은 모두 3%대를 웃돌았다. 엑손모빌은 지난 3년간 매출이 300조원을 넘나들어 투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보이지만 지난 2008년 이후 R&D에 매년 1조원 이상을 쏟아 부었다.
R&D 투자는 사업·제품 다각화 여부와 밀접한 연관을 보였다. 정유, 석화업종은 장치 산업으로 최근 설비 효율성이 세계 정상 수준에 도달했다. 순수 정유·석화 사업 비중이 높은 기업은 R&D 투자 필요성이 아무래도 떨어진다는 의미다. 반면에 SK이노베이션, LG화학처럼 배터리, 바이오 등 신규 사업에 나선 기업은 비교적 투자가 활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우리나라 정유, 석화업계 호황은 범용 제품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곧 유가, 제품가격이 흔들리면 실적 변동성도 극대화된다는 의미”라면서 “이 때문에 모든 기업이 고부가 제품 개발, 사업 다각화라는 숙제를 안고 있지만 당장 R&D를 쏟을 분야조차 선택하지 못한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