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집권 시 과학기술정책을 다시 전담 부처에 맡기겠다고 공언했다. 과학기술인의 자율적인 연구개발(R&D) 예산 배분도 약속했다. 또 이들 전문가가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공계 출신을 적극 등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육성 공약도 계승한다. '제2 과학기술 입국' 노력으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 후보는 “이런 의지 마저 '정부 주도'라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관(官) 주도 행정' 비판을 정면 반박했다. 다음은 문재인 후보와 일문일답.


-국정을 직접 운영해 본 유일한 후보다. 많은 사람이 차기 정부에서 지난 노무현 정권 시절 정책이나 국정 운영 방안을 대부분 그대로 계승시킬 것으로 예상하는데.
▲취임 이후 바로 국정 운영을 시작해야 한다. 국정 경험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민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참여정부 정책은 적극 계승할 것이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에 걸맞게 청와대를 투명하게 만들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본질이 무엇인지, 왜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대선을 치르게 되었는지 되새겨야 한다. 청와대가 '특권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의사결정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긴 참여정부 정책을 더욱 발전시켜 '대통령 일정 24시간 공개' '인사추천 실명제' 등으로 청와대 벽을 낮추겠다.
돈 안 드는 선거와 정치자금 투명화를 이루는 정치개혁을 지속 추진할 것이다. 지방분권과 혁신도시 등 참여정부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더욱 업그레이드할 것이다. '한반도 경제공동체 구상' 역시 자주국방 강화 정책과 함께 계승,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 사회, 국방,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위기상황에 처했다. 경제는 저성장 골이 깊어가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보호무역주의 등 외적 위험까지 맞물려 '사면초가' 상태다. 여기저기 심각한 구멍이 생겼다. 현 대한민국 경제 상황을 진단하고, 집권 시 우선 메워야할 구멍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의 경제 실패와 무능, 부정부패까지 겹쳐 경제성장률이 사상 최저다. 정부가 2017년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하며 2%대 성장률을 제시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 복합 불황시대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금 국민이 얼마나 먹고 살기 어려운가. 중산층은 무너지고 서민은 살기 어렵게 되고, 또 그것이 성장 걸림돌이 돼 지속 성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됐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은 더 이상 수출 중심만으로는 안 된다. 내수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성장 열매가 국민 개개인에 돌아가는 '국민성장 시대'를 여는 '경제 교체'가 필요하다.
먼저, 경제성장 바탕에 공정과 정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재벌의 과도한 수직계열화와 문어발식 확장,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내부 거래는 혁신기업 시장 진입을 막고, 재벌기업 집단 내부 혁신까지 가로막는다. 재벌 개혁은 재벌 대기업 국제 경쟁력 회복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불공정한 경제 적폐를 청산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한국 경제 성장 잠재력을 회복할 수 있다.
또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중소기업은 21세기 혁신 경제 기반이고 일자리 원천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가 공정해져야 한다. 그래야 중소기업 경쟁력도 살아나고, 중소기업 노동자 처우도 개선된다.
일자리 문제는 한국 경제 위기의 결과인 동시에 위기를 심화시키는 근본 원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가능한 모든 정책수단과 재정을 동원할 것이다. 앞으로 5년이 최악의 고용절벽 시기인 만큼, 그 때까지라도 정부와 공공부문이 최대 고용주로서 청년 일자리를 책임지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공공서비스 일자리 창출을 마중물 삼아 민간부분에서도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다.
-트럼프 보호무역주의로 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 등 트럼프발 무역 분쟁 확산 조짐이 일고 있다. 대응책이 있다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개방적 세계 경제 질서가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 정부가 자국 산업 보호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식으로 실행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세계적인 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 대외 기조를 쉽게 전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본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해 온다면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뿐 아니라 우리 쪽 요구도 제시해 '이익 균형'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미국의 정책변화에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외교채널을 통해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 것이다.
-후보 간 법인세 인상을 두고 이견차가 크다.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심각한 경제 상황과 일자리 문제,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세원 확충은 반드시 필요하다. 대기업 법인세 현실화도 그 방안 중 하나다. 우선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여야 한다. 우리나라 명목 최고세율 22%(지방법인세 포함시 24.2%)는 OECD 평균세율(23%) 보다 낮지 않은 수준이다. 또 현재와 같이 비과세·감면이 많은 법인세 체계 하에서는 명목세율을 인상하더라도 세수는 기대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실효세율 정비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도 세원이 부족하다면 일정 규모 이상 매출을 가진 대기업 법인세 명목세율을 인상하는 방안도 추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 없는 중장기 산업 정책을 바탕으로 국가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 정책은 부처 간 주도권 경쟁과 칸막이, 소통 부재로 중장기 전략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장기 산업 정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한다고 보는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서 확인됐듯 제조업이 강해야 국가 경제가 튼튼하고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산업 정책은 기존 산업 유지·강화와 신산업 육성이라는 '투트랙'으로 가야한다. 전자,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국가 기간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고부가가치화를 지원하는 정책과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특히 '민간주도 4차 산업혁명'을 이루기 위해선 적극적 연구개발(R&D) 지원, 초고속 IoT망과 인공지능 스마트 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 차원에서 인프라를 구축하겠다. 에너지 정책 전환을 통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산업과 스마트그리드 등 에너지 효율화 산업을 육성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일자리위원회 등을 두겠다고 선포했다. 또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국가 컨트롤타워 부활, 중기청은 중소벤처기업부로 격상시키겠다고 했다. 정부 주도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많은데.
▲산업은 당연히 민간 주도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제도, 인프라, 기초연구 등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초고속 국가인터넷망을 구축하고 그것을 민간이 이용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루기 위해서 정부는 시대에 뒤처진 불필요한 규제를 혁신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 민간의 중소기업과 혁신 창업기업이 자기 사업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난 2월 발표한 4차 산업혁명 정책도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규제가 신산업 성장 발목을 잡지 않도록 최소 규제, 자율 규제 원칙을 지키겠다. 4차 산업혁명 준비에 국가 역량을 모으기 위해 범부처 차원 4차 산업혁명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신설도 필요하다. 이런 것마저 '정부 주도'라며 부정한다면 그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OECD 국가 가운데 절대적 수치로 가장 많은 R&D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데도 성과는 미비하다. 신기술 확보에서도 뒤졌고 노벨상 수상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원인과 대응책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이 없어진 것이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자 중심 R&D가 아니라 경제 관료에 의해, 단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예산 배정이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국가 컨트롤타워를 다시 구축할 것이다. 과학기술인이 자기 전문성을 국정운영에서도 발휘할 수 있도록 이공계 출신을 적극 등용하겠다. R&D 예산을 관장하고 배분하는 역할에도 과학기술인을 참여시키겠다.
정부는 기초연구에 장기 투자해야 한다. R&D 예산은 과학기술인이 주도하는 연구자 주도형 연구로 가야 한다. 과학기술인이 자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 줘야 새로운 지식과 혁신적 기술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연구 환경이 조성되면 대한민국 과학기술인 노벨상 수상도 현실적인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연일 인재영입에 나서고 있다. ICT와 과학기술인도 역대 최대 규모로 다양하게 분포됐다. ICT 인재 영입에 적극적인 배경이 있다면.
▲'제2의 과학입국'이란 꿈을 다시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과학기술과 ICT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무관심과 방치로 과학기술분야가 침체됐고 종사자 사기도 떨어졌다.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과학기술·ICT 분야 발전이 관건이다. 이들 전문가 눈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학기술인, ICT 분야 인재가 자기 전문성을 국정운영에 발휘할 수 있도록 적극 등용하겠다'는 공약도 그런 맥락에서 발표한 것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운명은 어떻게 보는가. 차기 집권 시 계승할 뜻이 있는가.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는 질적으로 실패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스타트업·벤처지원을 하는 기존 기관과 중복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최순실·박근혜 사태와도 연루됐다.
각 지역에서 스타트업·벤처를 지원하는 체계는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에게 강제적으로 지역을 할당하고, 정량적 목표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기업을 선발하고 지원하는 방식은 오히려 건강하고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 조성에 역행한다.
민간에 권한과 책임을 위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 방식이 전환돼야 한다. 창업기업이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실패한 벤처기업이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대폭 강화될 필요가 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
, 사진=박지호기자 jihopres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