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라고 하면 흔히 인간과 분리된 대상체로 생각하기 쉽다.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들어가거나 위험한 작업을 대신 수행한다. 고도의 계산, 정보 저장 능력으로 획기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봇도 있다.
최근 각광받는 건 '입는(웨어러블) 로봇'이다. 말 그대로 사람 몸에 착용하는 로봇이다. 신체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작을 보조한다. 흔히 생각하는 로봇과 가장 큰 차이점이다. 자체 인지, 판단, 제어 기능이 있지만 독립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사람 동작에 맞춰 기능을 수행한다.
팔, 다리 같은 신체 외부에 장착한다고 해서 '외골격 로봇'이라고도 부른다. 영화 속 '아이언맨 수트'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애초 목적은 군사 용도였다. 1960년대 미국 해군이 외골격 로봇을 처음 개발했다. 무거운 포탄이나 무기를 옮길 때, 장거리 행군 시 유용할 것으로 봤다. 2004년 버클리대가 미국 국방부 지원을 받아 다리 외골격 로봇 'BLEEX'를 만들기도 했다. 이 시기를 웨어러블 로봇의 본격 개화기로 본다.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은 이른바 '슈퍼 군인'을 가능케 한다.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수십㎞를 걸어도 지치지 않는다. 군사용 로봇은 빠르고 쉽게 착용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는 근력 보조를 넘어 휴대성, 장비 적재 능력 등 야전 수요가 꾸준히 반영되는 추세다.
웨어러블 로봇은 센서로 착용자 움직임을 감지하고 모터를 구동해 동력을 발생시킨다. 이 때문에 노령화 시대에는 민간 수요가 급격히 늘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용도의 웨어러블 로봇 기능은 근력 '증강'이 아닌 근력 '보조'에 방점이 찍힌다.
앉거나 서는 동작, 계단 보행, 평지 보행 등 일상 생활의 근력을 보조한다. 매우 무거운 짐을 옮길 정도의 강한 동력은 필요 없다. 대신 약해진 사용자 신체를 확실하게 보호해야 하고, 유연성도 확보해야 한다.
보행 목적 근력 보조에 개발 역량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 엑소(Ekso) 바이오닉스는 한 쌍 지팡이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을 개발했다. 알터지(AlterG)의 웨어러블 로봇은 하반신 전체가 아닌 무릎만을 감싼다. 특정 관절, 부위 근력 보조만으로도 로봇 유용성이 확인된 사례다.
뇌졸중 등 편마비 환자를 위한 웨어러블 로봇도 있다. 지난해 조규진 서울대 교수팀은 폴리머 재질의 장갑형 웨어러블 로봇을 선보였다. '엑소 글러브 폴리'라는 이 제품은 폴리머 소재를 채택했다.
폴리머 소재 덕분에 착용하기 편하고 물 속에 넣어도 된다. 손이 마비되거나 근육이 손상된 사람도 일상 생활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문고리를 돌리거나 물병을 따는 등 웬만한 일상 생활에는 지장이 없다.
최근 자동차 업계가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나서는 것도 지켜볼 대목이다. 이동성(모빌리티) 한계를 넘는다는 점에서 업계 주목을 받는다. 세계 유수 회사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를 넘어 전기차, 개인 이동수단, 스마트 교통 시스템 등 이동수단 전반으로 영역을 확장 중이다. 웨어러블 로봇은 사람의 보행에까지 첨단 기술을 적용하려는 노력 일환이다.
우리나라 현대자동차도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뛰어든 자동차 회사 중 하나다.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생활보조용, 의료용 로봇을 개발한다. 무릎형, 고관절형, 모듈결합형, 의료형 4종 로봇의 시제품을 선보였다. 임상 진행 중인 제품도 있어 실제 상용화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근력 증강 로봇도 유용성을 인정받는다. 군사 용도가 아니라도 산업, 구난 현장 수요가 있다. 소방관처럼 특수 임무를 수행자가 착용하면 화재 진압, 인명 구조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인력만으로 부상자를 옮길 수 있다.
LIG넥스원, 에프알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등 산학연 합동으로 구성된 '파이언맨 팀'은 소방관용 웨어러블 로봇으로 지난 달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세계 두 번째 유압식 웨어러블 로봇으로, 30㎏ 무게의 물건도 들어올린다.
산업 현장에 웨어러블 로봇을 투입하면 큰 기계 장치나 설치물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무거운 자재를 조작하거나 이동할 때 반드시 거대 장치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근로자가 직접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작업 유연성을 높인다. 무거운 하중이 가해져도 근골격계 질환 발생 위험이 낮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