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반도체 업계 지형도가 변하고 있다.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삼성전자 등 메모리 업체가 대도약을 이뤘다. 자동차 반도체 시장 확대로 독일 인피니언도 오랜 만에 매출액 톱10 업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산업 성숙, 인수합병(M&A) 확대에 따른 과점화 현상으로 상위 업체로 매출액 쏠림 현상은 계속 커지는 추세다.
10일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1분기 반도체 업계 매출액 순위 톱10을 발표하며 이 같은 시장 변화를 소개했다. 인텔은 1분기 142억달러 매출을 기록해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2위 삼성전자는 메모리 값 상승에 힘입어 136억달러 매출로 인텔을 바짝 뒤쫓았다. 매출액 격차가 4% 수준으로 좁혀졌다. IC인사이츠는 메모리 값 상승에 힘입어 2분기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매출이 인텔을 처음으로 앞설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경영 혼란에 빠진 일본 도시바를 제외하면 메모리 업계는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1분기 각각 55억달러, 49억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업계 순위 3, 4위를 차지했다. 작년 3위였던 퀄컴(37억달러)은 6위로, 4위 브로드컴(41억달러)은 5위로 떨어졌다.
퀄컴의 순위 하락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둔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퀄컴에 이어 세계 범용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 2위 업체인 대만 미디어텍은 매출액 순위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삼성전자와 애플, 화웨이 등 주요 스마트폰 업체는 독자 모바일 AP 칩을 개발해 자사 제품에 탑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범용 AP 시장 성장세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미디어텍 자리를 꿰찬 곳은 독일 인피니언이다. 인피니언은 1분기 19억달러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 10위 반도체 업체로 재도약했다. 인피니언은 메모리 반도체 회사인 키몬다를 거느리고 있던 2000년, 세계 톱9 업체로 이름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키몬다가 파산한 이후 상위 업체 목록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피니언은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유한 업체다. 반도체 수요가 스마트폰 같은 소형 모바일 기기에서 자동차 쪽으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다는 증거다. 퀄컴이 자동차 반도체를 전문으로 다루는 NXP 인수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1분기 전체 반도체 시장 규모는 996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상위 톱10 업체가 차지하는 매출액 비중은 56%에 달했다. 1993년 이 비중은 43%, 지난해에는 55%였다. 시장 성숙, M&A 가속화로 상위 업체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