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통신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한 퀄컴은 스마트폰 시대 최고 수혜자로 꼽힌다. 스마트폰에서 중앙 연산을 수행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통신 모뎀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원칩 솔루션으로 2009년부터 매년 30~40%씩 매출을 늘려왔다. 2012년 말 한 때 세계 1위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시가총액을 추월할 정도였으니 위세가 대단했다.
전방 산업계 상황은 예전만 못하다.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으로 출현한 이후 스마트폰 시장은 매년 50~60% 성장했다. 그러나 이 성장세는 근래 10% 수준으로 둔화됐다. 칩 경쟁 환경도 변했다. 주요 스마트폰 업체는 저마다 독자 AP를 개발해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고 있다. 애플과 화웨이가 대표적이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퀄컴 칩을 쓰지만 절반가량의 물량에는 자사 반도체 사업부의 엑시노스 칩을 탑재한다. 범용 칩 시장 성장세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과 미국에선 특허 로열티와 관련한 송사에도 휘말려 있다.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스티브 몰런코프 퀄컴 최고경영자(CEO)를 11일 만났다. 2014년 3월 퀄컴 CEO 자리에 오른 그가 한국 기자들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몰런코프 CEO는 5G가 새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NXP 인수가 완료되면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분야에서도 퀄컴이 강자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에 자주 방문하나.
▲굉장히 자주 온다. '일 년에 몇 번' 이렇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온다. 여기 이 호텔 직원이 내 얼굴을 보곤 곧장 이름을 부를 정도다. 지난 20년간 한국에 방문했다. 처음 왔을 때는 엔지니어였다. 그 때 만났던 고객사 직원이 지금은 핵심 경영진이 돼 있다. 그게 많은 도움이 된다. 한국에 방문하면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고객사 관계자를 주로 만난다. 모바일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자동차쪽 사업하는 고객과의 대화도 많다.
-본사 매출이 정체기다. 주변에서 우려가 많을 텐데.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제품 판매다. 이쪽은 탄탄하다. 작년 대비 약 10%씩 성장하고 있다. 중국 지역 사업 성장률이 높다. 특허 라이선싱 사업은 변동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몇몇 분쟁(한국 공정위 과징금과 시정명령, 애플과의 특허료 산정 소송)은 단기적으로 실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특허 라이선싱 사업도 좋을 것으로 기대한다.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자동차, IoT로 통신 기술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와도 특허 마찰이 있었는데 결국 원만하게 해결됐다.
▲(과징금을 물긴 했으나 중국 정부가 퀄컴의 특허 비즈니스를 인정해준 덕분에) 중국 시장의 라이선스 매출이 늘어났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늘었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 중국에서도 라이선스 사업을 할 수 있게 돼 재무, 사업 안정성이 보다 높아진 건 분명하다.
-5G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놀라운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5G가 상용화되면 크게 세 가지 기회가 생긴다. 첫 번째는 기존 무선 네트워크의 발전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빨라지고 신뢰성도 올라간다. 두 번째는 새로운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 신뢰도와 네트워크 수용량이 확대되면서 가능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IoT 서비스, 즉 업계에서 매시브(Massive) IoT라 부르는 시장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다.
-5G가 상용화되면 통신사에도 도움이 되나.
▲당연하다.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 없던 사업을 새로 만들어 매출을 늘릴 수 있다. 5G가 상용화되면 과거 유선으로 실시했던 서비스를 무선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된다.
-5G 상용화 진척도는 어떤가.
▲5G가 먼 미래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곧 다가올 미래다. (당초 5G는 2020년 상용화가 목표였으나 최근 이 목표 시기가 2019년으로 1년 앞당겨졌다) 각국 통신사, 단말 제조사와 협력 중이다. 한국으로 치면 SK텔레콤, KT,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기업이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다.
-NXP 인수도 5G 사업과 연관성이 있나
▲우리 전방시장이 모바일에서 자동차, IoT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다. NXP 인수를 완료하면 퀄컴은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NXP는 세계 자동차 반도체 시장 1위 업체다) 한국에서도 NXP가 고객사(현대자동차)와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다양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합병 작업은 순조롭나
▲지난달에 미국 정부로부터 합병 승인을 받았다. 추가 서류 요구 없이 한 번에 승인을 받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미국 외 다른 지역에서도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연내 각국 규제 당국으로부터 승인을 획득하고 합병 작업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본다.
-중국 규제 당국이 사업 매각 등 조건부 승인을 내면 미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퀄컴과 NXP의 사업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객사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다. 이 때문에 미국 규제 당국이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고 본다. (중국에선) 정치, 외교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풍부한 M&A 경험으로 비춰보면 큰 무리 없이 승인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스냅드래곤 835 얘길 해보자. 초기 수율이 좋지 않다는 루머가 일부 나왔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만든 제품 가운데 가장 최첨단이다. 생산 역시 최점단 (10나노) 공정에서 이뤄진다. 양산 초기 약간의 수율 문제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건 신공정을 활용해 제품을 찍어낼 때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번에 그러한 문제가 특별하게 도드라지진 않았다. 지금 물량이 모자라는 건 수율이 아니라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긍정적 신호다. 하반기에는 공급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 갤럭시S8에 스냅드래곤 835가 탑재됐다.
▲삼성전자답게 탁월한 신제품을 내놨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회사도 스냅드래곤 835로 신형 스마트폰을 내놓을 것이다(소니 엑스페리아 XZ 프리미엄, 샤오미 미6 등).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기에도 835가 많이 도입되고 있다. 아무래도 연산 성능이 높아야 되니 많이 찾는다.
-스냅드래곤 835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에서 생산된다. 파운드리 협력사를 바꿀 생각이 있나.
▲퀄컴은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파운드리 업체와도 탄탄한 관계를 계속 유지해왔다. 지금 삼성전자에서만 우리 제품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 파운드리 업체와 협력 관계를 가져가는 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
-퀄컴은 현재 5G 통신칩 분야(개발 역량, 협력 관계 등)에서 가장 앞서있다.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 이 같은 시스템을 구축, 활용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소프트웨어와 반도체를 사용하고 있다. 퀄컴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가 비단 통신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아날로그, 디지털 컴퓨팅 분야에서 다양한 기술을 보유했고 경쟁력도 세계 정상급이다. 모바일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출하 기준으로 따지면 우리가 가장 많다. 중앙처리장치(CPU), 디지털신호처리장치(DSP) 역시 마찬가지다. (퀄컴은 자체 설계한 CPU, DSP, GPU 코어를 스냅드래곤 칩에 집적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경쟁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스티브 몰런코프 퀄컴 CEO는
1969년생이다. 퀄컴이 첫 직장으로, 20년간 근무했다. 엔지니어로 입사해 CEO 자리에 올랐다. 최고운영책임자(COO)겸 사장으로 근무할 당시 칩셋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퀄컴의 사업 영역을 통신 모뎀 분야에서 컴퓨팅, 그래픽, 멀티미디어 모바일 칩 시장으로 확장한 장본인이다. CDMA 기술 글로벌 확대 적용, 광대역 기술인 W-CDMA 도입, 4G 롱텀에벌루션(LTE) 기술 상용화 등을 주도했다. 31억달러 규모 아테로스 인수를 이끌었다. 아테로스는 무선랜 칩셋 전문 업체다. 이 인수로 퀄컴의 사업 다각화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그는 현재 NXP 인수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전력, 무선통신 수신 기술 분야 등에서 7개 개인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반도체연맹(GSA) 회장,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버지니아 공과대학과 미시간대에서 각각 전기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