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인선과 내각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심사숙고해왔던 경제·정책과 외교·안보 라인 인선의 첫 단추를 뀄다.
문 대통령은 “개인적 인연은 없어도” 혹은 “평소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라는 부연설명을 통해 전문성을 최우선 고려한 인선 배경을 암시했다. 대통령 측근 인사는 배제됐고, 철저한 능력 위주 균형 인사라는 평가다. 관심을 끌었던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기업 개혁 운동가'인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임명돼 새 정부의 강력한 대기업 개혁 의지도 거듭 확인됐다. 외교부 장관으로 대한민국 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임명해 연일 파격 인사를 보였다.
◇파격·실용적 경제라인 인선…'일자리 창출·대기업 개혁' 동시 추진 의지
문 대통령은 21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을 지명하고, 청와대 정책실장에는 장하성 교수를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 정책인 이른바 'J노믹스'를 구체화하기 위한 적임자로 이들 투톱체제를 택했다.
김 후보자는 오랜 관료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감 있게 경제 정책을 실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장 정책실장은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과 민생경제 전반의 그림을 그리는 역할로 균형을 이뤘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부총리에 내정된 김 후보자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재부 차관을 지냈고 박근혜 정부 초기 국무조정실장도 역임하는 등 정권에 상관없이 지속 공직을 맡아왔다. 이른 시일 내 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와 경제 활력을 만들어내는 게 새 정부 핵심 국정과제인 만큼 위기관리 능력과 추진력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설된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된 장 교수는 '안철수의 정책 멘토' 역할을 해왔던 인물로 깜짝 인사라는 평가다. 1997년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은 당시 삼성 계열사 간 부실·부당 거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기업구조 개선, 소액주주 운동 등을 이끌었다. 이에 따라 장 실장은 경제 성장의 불균형 해소와 소득 격차 완화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장 정책실장에 대해 “과거 대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최고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한국 경제에 해박한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력 집중과 기업지배구선 개선 등 난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장 실장은 임명 직후 “한국 경제가 그동안 방향을 잃고 정체돼 있었기 때문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며 “이 정부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 경제가 되려면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러한 과정은 공정해야 하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그 결과가 모두에게 정의롭게 분배돼야 한다”며 강력한 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주 문 대통령은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과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선임하면서 고용과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으로 요구했다. 이번 경제라인 인선으로 일자리 창출과 함께 대기업집단 개혁도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는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을 임명했다. 김 원장은 개혁적 보수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다. 개혁과 실용보수의 조화를 아우르면서 실질적 경제 변화를 이끌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김 원장은 평소 저와 다른 시각에서 정치·경제를 바라보던 분이지만 경제 문제도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손잡아야 한다”면서 “국민경제자문회의가 헌법 취지대로 활성화돼서 고단한 국민들의 삶을 개선해내는 데 실질적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인사, 기존 관행 벗어난 '전문 인사'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된 강경화 유엔사무총장 정책특보는 한국 여성으로서 유엔 기구 최고위직에 진출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외교부 정통 출신이 아닌 비외무고시 출신이기도 하다. 강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쳐 외교장관으로 임명되면 외교부 역사상 최초 여성 장관이 된다. 앞서 임명된 피우진 보훈처장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또 하나의 '유리천장'을 뚫은 파격 인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도 그동안 군 출신 인사가 임명돼 온 전례를 벗어나 외교관 출신인 정의용 아시아정당 국제회의 상임위원장을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정 실장은 국제노동기구 의장, 제네바 대사를 역임하면서 다자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며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를 국방의 틀에서만 협소하게 바라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안보와 외교는 동전의 양면이라 생각한다”면서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북핵 등으로 안보를 다자외교 틀 안에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 안보실장은 외교관 출신이면서 국회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한 바 있어 정무감각도 겸비했다는 평가다.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정책 입안에 도움을 줄 통일외교안보특보에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와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임명했다. 문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외교 정책을 입안하는데 도움을 준 햇볕정책 전문가다.
문 대통령은 “비록 비상임이지만 국제사회에서 이미 능력과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두 분이 참여해 산적한 실마리가 풀려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은 이금로 법무부 차관, 봉욱 대검 차장,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 등을 추가로 인선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