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상담학 용어 중에 직면(直面, Confrontation)이란 단어가 있다. 표현 그대로 마주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상담을 받는 내담자가 피하고 싶거나 혹은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상담을 하는 상담자가 직접 언급해 직접적으로 문제 앞에 서도록 만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내면의 이야기에 대해 피드백을 보내는 경청(傾聽)이나 다른 사람의 감정, 의견, 주관에 대해 자신도 그렇다는 것을 알려주는 공감(共感)과는 달리 직면은 매우 적극적인 개입방법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부감과 방어기제를 발휘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직면을 하는 상황, 직면을 하게 만드는 상황은 갈등을 격발하고 심화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상황을 악화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전문적으로 습득하고 경험한 훌륭한 상담자라 할지라도 도전적인 느낌의 직면을 통해 원하는 방향의 문제해결은 쉽지 않다. 드라마에서 직면을 거칠게 할 경우 등장인물은 물론 시청자들도 매우 불편해진다.
그런데, 드라마 '귓속말'은 낮은 목소리의 직면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드라마 속 상황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적용해보자. 어떤 심리학, 상담학 책보다 현실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다.
◇ 드라마 '귓속말'에서 직면하게 만드는 방법, 낮은 목소리로 근본과 핵심을 말하다
'귓속말' 제8회 방송에서 “강정일 팀장, 조심해”라고 신영주(이보영 분)는 최수연(박세영 분)에게 말했다. 최수연은 연인 강정일(권율 분)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웬만한 설득과 회유로도 그녀의 마음을 흔들 수 없었다. 그런데, 신영주가 던진 말에 최수연은 크게 흔들렸고 반응했다.

신영주의 표현법은 무척 흥미롭다. 직면이라는 핵심에 맞게 강정일을 믿지 말라는 근본 이야기를 짧게 던졌다. 그것도 귓속말에 가까운 거리에서 작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얼굴을 보면서 하는 대화나 눈빛을 마주하면서 하는 대화가 아닌 목소리로만 낮게 전하는 대화는, 마치 밤늦은 시간 라디오 디제이의 달달한 멘트를 듣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이완하게 해 오히려 더욱 크게 직면하게 만든다는 것을 드라마는 보여줬다.
제10회에서는 강정일이 “나도 귓속말이 들리네”라고 하면서 이동준(이상윤 분)의 귀에다 대고 “포기해”라고 말했다. 이를 듣는 시청자들은 어쩌면 이동준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었는데, 내면 표현과 메시지 전달에 나지막하게 전달한 이야기가 얼마나 큰 파급력과 파괴력을 가지는지 알려준 시간이었다.
제9회 방송에서 “백상구는 믿지 마”라고 이동준이 최수연에게 한 말과 “강정일씨는 연인도 버린 사람이에요”라고 조경호(조달환 분)에게 이상윤이 한 말 또한 같은 톤을 유지한다.
크게 소리치는 것보다 귀에 대고 작게 이야기하는 귓속말이 더 깊고 길게 뇌리에 남을 수도 있는데, '귓속말'이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그렇게 증폭될 수도 있다. 실생활에서도 보면 누군가는 무척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는데 그 말에 설득된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직면은 기본적으로 도발적인 성향을 가진 표현법인데, 디테일을 바꾸면 더욱 강력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귓속말'은 보여줬다.
◇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쓸 때의 위력
'귓속말'에서 이동준은 선배인 부장판사에게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사용하기도 하고, 신영주 또한 이동준에게 존댓말을 쓰다가 반말을 쓰기도 한다. '귓속말'에서의 반말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면서, 주도권에 따른 관계 재정립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상윤이 대법원장에게는 존댓말을 쓰면서 '지시'라는 용어를 사용해 반말을 한 것보다 더한 영향을 미쳤는데, 만약 '귓속말'에서 반말을 통한 내면 표현이 이전에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다소 생뚱맞은 장면이라고 생각됐을 수도 있다.
'귓속말'에서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쓸 때 대화톤은 대부분 낮고 차분했는데, 이는 낮은 목소리의 직면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존댓말과 반말의 교차사용은 낮은 목소리의 직면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예의바른 목소리로 말했지만 반말로 말하는 것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근본으로 직면시킨 것과 비슷한 뉘앙스로 느껴진다. '귓속말'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면 화내며 소리지르지 않고도 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상욱 전자신문엔터테인먼트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