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첫 조직 개편에서 과학기술 진흥에 힘을 실었다. 10여년 만에 '과학기술혁신본부'를 부활시켜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보강하고 예산권까지 준다.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효율적인 과학기술 정책 수립, 국가 연구개발(R&D) 역량 강화가 필수라고 봤다.
향후 국정 운영에서 과학 정책 위상과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신설과 더불어 미래창조과학부의 과기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로 이를 뒷받침한다. 과거 과기혁신본부 운영 시절 제기됐던 이른바 '선수심판론'을 극복하는 것이 과제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 혁신 컨트롤타워 강화'를 목표로 미래부 조직을 개편한다.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하고 정책 자문·조정 기구를 과학기술자문회의로 일원화한다.
새 정부 조직은 단기 성과 중심 R&D 투자를 지양하고 과학기술 융·복합 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게 목적이다. 그동안 범 정부 차원 R&D 투자 전략과 역할 분담이 불명확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미래부는 지난 정권의 간판인 '창조경제'를 책임지는 부처로 탄생했다. 정권 교체로 부처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렸지만 '최소한의 개편' 원칙에 따라 유지됐다. 부처 명칭도 예상을 깨고 바뀌지 않았다.
미래부는 창조경제와 관련된 창업 지원기능을 신설되는 중소벤처기업부에 넘기는 대신 과학기술 정책 기능을 강화한다. 사실상 3차관 체제로 개편된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을 담당하는 1, 2차관과 별도로 차관급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설치한다. 혁신본부는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고 R&D 예산 심의·조정, 성과 평가를 전담한다.
강력한 권한을 가진 과학기술 정책·예산 컨트롤타워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본부는 과학기술 정책을 총괄하고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물론 국가 R&D 예산권까지 쥔다.
기획재정부가 쥐고 있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 권한을 가져온다. 500억원 이상 투입되는 대형 R&D 과제는 예타를 통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미래부가 기술성 평가를 담당하고 최종 권한을 기재부가 가졌다. 혁신본부 체계에선 R&D 사업 예타를 처음부터 끝까지 미래부가 맡는다.
국가 R&D 예산 수립에도 직접 관여한다. 종전에는 기재부가 지출한도(실링)를 설정하면 미래부는 한도 내에서 예산을 심의했다. 새 정부 조직 개편안은 기재부와 미래부가 공동으로 지출한도를 설정하도록 했다. 예산 수립 초기부터 혁신본부가 의견을 낼 수 있는 구조다. 미래부는 출연연 운영비와 인건비 조정권한도 갖는다.
혁신본부는 과학기술정책국, 연구개발투자심의국, 성과평가정책국 3국 체계로 구성한다. 1차관 산하에는 기획조정실, 연구개발정책실, 미래인재정책국이 남는다. R&D 사업 성과 평가 기능을 보강하기 위해 혁신본부 주요 직위는 개방형으로 지정한다.
본부장 지위도 높다. 국무회의에 배석해 중요 정책 결정에 참여한다. 일반 차관보다 높은 처장급 보수를 받는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안건을 예비 검토하는 등 실무 지원한다. 자문회의는 과학기술 분야 최고 자문·조정 기구로 확대된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 과학기술전략회의 기능을 자문회의로 이관, 통합한다.
과학계는 강력한 컨트롤타워 수립을 반기는 분위기다. 그동안 미래부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기능, 권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과학계는 새 정부 출범 전후로 예산권을 가진 컨트롤타워 수립을 촉구했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국가 R&D를 일목요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제대로만 운용된다면 과학계 요구와 부합하는 것”이라면서 “핵심은 컨트롤타워가 예산권과 배분권을 제대로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과학기술 조직이 잇따라 강화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청와대 조직개편에서 과학기술보좌관을 신설했다. 지난 정부 미래전략수석실 산하의 기능을 격상해 따로 떼어낸 형태다. 과학기술을 통한 4차 산업혁명 실현을 국정 전면에 내세웠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정부 조직을 부활시켰다는 분석이다. 참여정부는 과학기술부총리 산하 혁신본부를 운영했다. 청와대 직제에 '정보과학기술보좌관'도 뒀다. 이명박 정부 들어 둘 모두 폐지됐다. 이 때문에 지난 경험을 반면교사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혁신본부는 '선수심판론'에 휩싸여 어려움을 겪었다. 혁신본부는 옛 과학기술부 산하에 있으면서도 범 정부 R&D 예산을 심의했다. 과기부가 R&D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선수'이면서 예산을 심의하는 '심판' 역할까지 한다는 지적이다. 같은 지적이 새 정부에서 되풀이될 우려가 있다.
과기계 한 기관장은 “혁신본부 부활은 과학계 위상 강화라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시도지만 과거 발생했던 문제를 경계해야 할 것”이라면서 “조직 구조상 선수심판론이 제기될 수 있는 만큼 독립적이고 공정한 운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