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의 두 곳에서 21세기 '철의 장막'이 내려지고 있다. 하나는 영국과 유럽대륙 사이의 도버해협에 내려지고 있는 격리의 장막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Brexit)이다. 또 하나는 미국을 태평양과 대서양에 갇히게 하는 고립의 장막이다. 미국이 지구온난화 대책의 구심점인 파리협정으로부터 탈퇴(Parexit)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1946년 윈스턴 처칠이 소련과 사회주의의 팽창을 경고하면서 사용한 '철의 장막'은 전후 새로운 세계질서인 냉전구도를 획정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반대로 브렉시트와 파렉시트는 자본주의 근간을 흔들며, 영국과 미국의 주도 아래 국제관행을 이끌어 온 '앵글로색슨주의'의 쇠퇴를 재촉하는 신보호주의의 태동이다. 이 역시 서방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내향적 정치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과 무관치 않다.
브렉시트는 오늘날 영국의 위상도 그렇거니와 독일과 프랑스라는 굳건한 유럽주의(대륙주의)가 버티고 있어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반면에 미국의 파렉시트는 미국의 고립주의와 제일주의에 머물지 않고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실로 크다. 지난달 말에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회의(주요국 정상회의)가 끝난 뒤 메르켈 독일 총리가 한 말은 이를 방증한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나라)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들의 장래를 위해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혼돈으로부터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포착하는 게 나라마다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됐다.
분석가들은 파렉시트의 단초를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표명 연설에서 찾는다. “나는 파리 시민이 아니라 피츠버그 시민을 대표하여 뽑혔다”고 말한 것이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예전에 철강업이 번창했던 피츠버그를 둘러싼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압승했다. 이 발언에는 백인 노동자를 핵심으로 하는 지지층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대표적 지지기반인 탄광노동자의 고용을 확보할 수 있는가, 석탄산업이 부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셰일가스 혁명으로 가격이 떨어진 천연가스와도 경쟁이 안 된다.
이런 이유로 하와이주는 2045년까지 전력을 모두 태양광 등으로 돌릴 계획이다. 캘리포니아주 등 다른 주들도 따를 태세다.
새로운 기술과 고용을 창출하는 탈탄소사회로의 이행은 거스를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다. 전기자동차 메이커 테슬라가 시가총액에서 GM을 제치고 미국 자동차업계의 정상에 선 것은 이를 상징한다. GE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 주요기업이 잇달아 탈퇴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는 21세기 탈탄소형 문명으로 빠르게 전환 중이다. 미국이 오래된 산업구조에 집착해 발길을 막은 일은 전에도 있었다. 트럼프와 같은 공화당의 부시정권이 2001년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해 온난화대책 정체를 초래한 일이다. 시대에 역행하는 이탈이었다. 오바마 정부가 이를 돌려 놨으나 지금 되돌아가는 형국이다. 파리협정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시리아와 니카라과 두 나라 뿐이다.
여기서 눈여겨 봐야할 나라가 중국이다. 온난화 대책에서 지도적 입장을 차지하게 된 것은 미국과 함께 파리협정을 주도한 중국이다.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위상 저하는 피할 수 없다. 과거 서방세계에 빗대 '죽의 장막'으로 불리었던 중국이 글로벌 룰 메이커로 나서는 아이러니를 목격한다.
미국 조야에서는 탈 트럼프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혁신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게 사양화한 석탄산업 등에 집착하는 것보다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보기술(IT)로부터 금융과 석유산업까지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탈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 파리협정을 지지하는 주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도국의 온난화 대책을 지원하는 유엔의 '녹색 기후기금'에 대한 자금 제공도 중단한다고 했다. 개도국 저항도 만만치 않다. 미국 제일주의에 머물러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해 가는 것은 외교상 좋은 계책이 아니다. 21세기 미국의 지도력이 심각하게 도전받고 있다. 녹색성장의 국제적인 자산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도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곽재원 서울대 공대 객원교수
![[곽재원의 Now&Future]세계는 새로운 '철의 장막'의 시대로](https://img.etnews.com/photonews/1706/962090_20170611141140_206_000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