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출범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반환점을 돌았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 과제를 수립·확정, 다음 달 초 문재인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하는 것으로 공식 업무를 마친다. 정부가 인수위원회 없이 곧바로 국정 운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정권 초반의 안정 기반 구축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계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와도 갈등을 빚은 일자리 마련, 통신비 인하 등 민생 현안 공약은 여전히 세부 실행 방안을 찾지 못했다. 공약 이행을 일방으로 강요하면 '점령군'의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에 물러서면 공약 후퇴 논란이 기다린다. 진퇴양난의 기로에 선 국정기획위의 선택에 쏠린 관심이 크다.
◇文 대통령 핵심 공약 두고 마찰
국정기획위의 활동이 전반부를 넘어섰다. 최대 현안은 논란을 빚은 공약의 이행 여부와 나아가 방안 마련이다. 민생 현안과 직결된 상징성 공약이 다수다.
1시간 최저 임금 1만원으로의 인상, 주당 근로시간을 현행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관련 공약이 대표 사례다.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는 국정기획위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문재인 정부의 노동 부문 공약에 우려를 표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8일 서울 중구 서울상의회관에서 가진 국정기획위 간담회에 앞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정책 추진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라면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현실 실현 가능 방안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소기업계는 대기업보다 더 큰 피해를 걱정했다. 박성택 중기중앙회 회장은 “중소기업계는 근로시간 단축, 시간당 최저 임금 1만원 보장 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면서 “노·사·정 간 충분한 의견 수렴, 사회 합의를 거친 제도 정비, 단계 시행으로 부담을 최소화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통신비 인하도 실행 방안을 마련하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문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국민 피부에 가장 와 닿는 공약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 단체를 비롯한 일반 사용자는 모든 요금제에서 기본료에 해당하는 1만1000원의 일괄 인하를 바라고 있다. 최근 국정기획위가 인하 대상을 2세대(2G), 3G, 롱텀에벌루션(LTE) 일부 이용자로 한정하면서 공약 후퇴 논란이 뜨겁다. 이동통신업계는 가입자 전체 대상의 기본료 인하는 영업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이행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국정기획위가 업무 보고를 보이콧하는 등 갈등이 표면화됐다.
전문가와 업계는 통신비 인하를 둘러싼 국정기획위 일방의 논의에 우려를 표시했다. 여당 내에서도 견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기본료의 무조건 폐지가 아니라 국민 통신비 부담을 완화할 순차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이개호 국정기획위 경제2분과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여당 의원들도 속도 조절을 주문하자 국정기획위의 고민은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교육부의 초·중등 교육 기능을 시·도 교육청으로 이관하는 공약도 적지 않은 진통이 계속됐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최근 “국가교육회의 설치와 중장기로는 헌법 개정을 거쳐 독립 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겠다”면서 “이를 통해 교육부의 초·중등 교육 관련 기능을 시·도교육청으로 대폭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다. 현실화하면 교육부의 초·중등 교육 관련 기능 가운데 예산 분배 등 교육청 지원 업무 외의 모든 기능이 시·도교육청으로 넘어간다. 교육부에는 대학·평생·직업 교육 기능만 남는다.
정부의 움직임을 두고 교육 일선에서는 찬반 여론이 치열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논평을 내고 “(초·중등 교육 관련 기능 이관은)지식정보화 및 4차 산업혁명 등을 대비한 유·초·중등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가 수준의 교육 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상황을 외면하는 처사”라면서 “새 정부가 밝힌 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 강화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현행 국가직 공무원인 교사가 지방직 공무원 신분으로 전환하는 것을 우려하는 지적도 따른다.
원자력 발전소의 단계 축소 공약도 이행이 녹록지 않다. 국정기획위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 월성원전 1호기 계속운전, 천지원전 신규 건설 취소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은 내지 못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 결정을 위해 현장 조사와 함께 매몰비용, 안정성을 검증하겠다는 계획 정도다.
국정기획위는 민감한 문제는 충분한 의견 수렴과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내리겠다는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통신비 인하, 교육 환경 개선 등은 국민 관심이 높고 이해 관계가 첨예하기 때문에 결론 내리기에 얽매여선 안 된다”면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마무리가 안 된 것은 추후 과정을 만들어 계획에 넣는 한이 있더라도 결론을 위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약 이행 여부가 문 대통령의 초반 지지도와 신뢰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숙고하겠다는 의미다. 이들 공약을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시키되 세부 실행 방안은 중장기 과제로 남겨질 공산이 크다.
최호 산업정책부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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