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행사에서 '탈 원전'을 공식 선언됐다. 역대 정부가 원전에 우려를 표한 바는 있지만 신규 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현실성 여부를 두고 논란이 커졌다. 사회·경제적 수용 가능 여부와 대안이 무엇인지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탈 원전이라는 거대화두를 던진 문재인 정부가 5년 동안 챙겨야 할 에너지 정책을 3회에 걸쳐 진단한다.
20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새 정부의 탈 원전·석탄 기조가 유지되면 발전비용이 2016년 실적치 대비 약 21%(11조6000억원), 2029년(7차 전력수급계획) 대비 약 20%(10조9000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온실가스 배출 저감, 원전 불안감 감소 등 긍정적 효과가 있지만 에너지 수급과 경제성 차원에서 부정적 효과를 우려했다.
에너지 업계도 대체적으로 이에 동의한다. 원전과 석탄화력 중심 에너지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지만 두 개의 핵심 전원을 동시에 줄이는 것은 무리라는 게 중론이다.
에너지 전환에 속도 조절이 중요하다는 주문이다. 사업자가 원전과 석탄을 대신해 다른 연료로 전환하고, 이를 위한 제도와 시장을 갖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행히 여건은 나쁘지 않다. 2011년 순환정전 이후 발전소를 대거 늘리면서 전력예비율은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시장과 제도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인 전력위기가 사라짐 셈이다.
친환경 에너지 중심의 변화는 진행 중이다.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4개 석탄화력이 취소되는 등 공급 중심의 전력 정책이 수요 중심으로 전환됐다. 고리 1호기 해체도 이미 2015년에 결정됐다. 탈 원전·석탄 정책을 발표는 새 정부의 의지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여건이 받쳐줬다.
전력수급 면에서는 당장 꺼야 할 급한 불은 없다. 고리 1호기 이후 다른 원전의 수명만료는 2023년부터 본격화된다. 현 정권에서는 원전으로 인한 전력부족 사태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문제는 다음 정부 이후다.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현 정부의 결정이 차기 정부에서 재앙에 가까운 전력부족 사태를 가져올 수 있다. 업계는 이번 기회에 에너지 비용을 현실화하고 경제급전 순위로만 운영되는 전력시장을 다양화하자고 목소리를 모은다.
가장 관심 받는 사안은 전력시장에 경제성과 함께 안전·환경 요인을 반영하도록 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이다. 지금 우리 전력시장은 발전소에 사용되는 연료비만을 따져 경매한다. 때문에 원전 전기가 가장 많이 팔린다. 그 다음은 석탄, 천연가스 순이다. 안전과 환경 부담에 따른 비용을 추가하면 원전과 석탄, 천연가스가 비슷한 선상에서 경쟁할 수 있다.
발전연료 세제 개편도 개선 대상이다. 현재 천연가스는 우라늄, 석탄과 비교해 더 많은 세금을 낸다. 석탄 개별소비세는 ㎏당 30원, 천연가스는 60원이다. 여기에 수입부과금과 관세 등을 합치면 천연가스 도입 비용은 더욱 늘어난다.
에너지 업계는 원전과 석탄, 천연가스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는 시장제도를 만들면, 정책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원전과 석탄 비중은 줄어들 것으로 본다. 에너지 시장이 원전과 석탄 공기업에서 민간기업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기요금에 대한 사업자 자율성 보장이 요구된다. 원전과 석탄의 빈 곳을 메우려면 민간 참여가 많아져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전기요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시장논리에 맞지 않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상직적인 탈 원전 선언보다는 민간의 에너지 시장 참여를 독려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탈 원전, 탈 석탄 관련 전원구성 결정 기준별 영향, 자료:에너지경제연구원>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