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9년 동안 남은 것이라곤 곤두박질친 매출과 매일 찾아오는 협력업체의 빚 독촉뿐입니다.”
이은행 일성레포츠 대표는 개성공단 중단 이후 이제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일성레포츠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 가운데에서도 유망한 중소기업으로 꼽혔다. 매출은 한 해 160억원에 달했고, 북측 근로자 740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휠라, 형지, 네파 등 유명 의류 기업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물품을 납품하던 일성레포츠의 꿈은 개성공단 중단과 함께 모두 주저앉았다. 원부자재와 만들어 놓은 옷들을 그대로 개성공단에 남겨둔 채 쫓겨나듯 남으로 내려와야 했다.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이달로 16개월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재개는 불투명하다. 정부 지원마저 일부 종료되면서 입주 기업은 극심한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급격한 매출 감소뿐만 아니라 일부 기업은 휴업 상태로 내몰렸다.
일성레포츠 본사의 2015년 매출은 6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은 3000만원으로 고꾸라졌다. 자회사 매출도 107억원에서 40억원으로 절반이상 하락했다. 28명이던 직원은 3명만 남고 모두 회사를 떠났다.
이 대표는 “매출의 급격한 하락으로 말미암아 법원에 기업회생 절차를 두드렸지만 기업 가치가 없다며 법원마저 거절했다”면서 “한때 경제부장관 표창까지 받은 기업을 이렇게 무너지도록 뒷짐만 지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기업은 아예 휴업 상태다. 개성공단 폐쇄 직전 해인 2015년의 매출은 18억원이었다. 개성공단 상주 5명, 국내 3명 등 직원 8명이 의류 관련 OEM 납품을 담당하고 있었다. 개성공단 중단 이후 이 모든 것이 변했다. 개성공단에만 유일하게 생산 기지가 있었기 때문에 중단 후 곧바로 베트남 등 해외 생산 기지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해외 이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지난해 말 국내에 새로운 공장을 열었다. 현재는 이마저도 휴업에 이르렀다.
익명을 요구한 A기업 대표는 “개성공단 중단 후 정부가 지급한 보험금을 협력사 외상, 직원 퇴직금 등으로 지급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면서 “지난해 간신히 국내 생산 공장을 열었지만 이도 쉽지 않다. 현재는 휴업 상태로, 3개월마다 돌아오는 대출금 상환에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뿐만이 아니다. 개성공단 공동 브랜드로 출범한 '시스브로'도 판매처를 잃는 등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시스브로는 2013년 개성공단 잠정 폐쇄 사태 이후 원청 의존도를 낮추고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입주 기업들이 모여 만든 브랜드다. 입주 기업들이 자체 제작하고 마케팅까지 도맡아 한다는 점에서 의미도 있었다. 출범 후 전국 TV홈쇼핑 매진 기록을 하는 등 16개 참여 업체는 한때 20여개까지 늘었다.
그러나 개성공단 중단 이후 시스브로는 동력을 잃었다. 생산기지를 잃은 입주 기업이 이탈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현재는 기능성 속옷 중심으로 일부 온라인을 통해서만 판매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의 개성공단 제품 상설 전시장인 '평화누리 명품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2015년 말에 개점한 평화누리 명품관은 입주 기업 20여 업체가 생산한 잡화, 의류 등 18개 품목 제품을 전시·판매해 왔다. 현재는 '우수 중소기업 전시 판매관'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이희건 경기개성공단사업조합 이사장은 “실제 언론에 공개된 기업 외에도 고통을 겪고 있는 업체가 주변에 정말 많다”면서 “개성공단을 재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기업들이 버텨 낼 수 있도록 정부의 맞춤형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개성공단 중단 이후 입주 기업들의 경영 현황은 참담한 수준이다. 정부에서 기업 피해 확인 금액과 실제 기업이 손해를 본 금액 간 차이는 3000억원이 넘는다. 입주 기업들은 결제를 제때 하지 못해 원부자재 손실에 대한 책임 문제로 협력업체와의 소송이 줄을 잇고 있으며, 거래 중단도 이어지고 있다.
개성공단기업협회에 따르면 최근 협회에 제출된 기업의 재무제표 분석 결과 평균 26.5%의 매출 하락과 9억원 안팎의 손실이 발생했다. 손실 유형으로는 영업이익에서 영업 손실 전환, 영업이익 감소, 영업 손실이 증가한 경우가 74%를 차지했다. 게다가 이들 기업 39.5%는 부채가 증가했다. 자본은 21.2% 하락했다.
이종덕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은 “매출 하락과 적자 등으로 악화된 기업 신용도에 맞춰 시중 금융권에서 대출금 상황 압박과 이자율을 급격히 올리고 있다”면서 “개성공단 중단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고대했다.
정영일기자 jung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