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출형 원전 'APR1400'의 뒤를 이를 차세대 원자로 기술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 6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를 검토하면서 상용화 기회가 물 건너가는 형국이다.
28일 원자력계에 따르면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차세대 원전 개발 사업이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대통령이 탈원전을 공식화한 가운데 신규 건설하고 있던 신고리 5, 6호기 사업마저 여론 수렴을 이유로 일시 중단된 탓이다.
우리나라의 차세대 원전 사업은 'APR플러스(+)'와 '아이파워(iPOWER)', 국제 공동 개발 과제인 핵융합실험로 '이터(ITER)'다. 앞으로 국가 전력발전의 핵심을 담당하기 위해 개발하고 있지만 기술 구현 기회를 찾기 어려워졌다.
APR+는 상용화를 목전에 둔 기술로, 개발 중단 시 손실이 크다. APR+는 원전기술발전방안(Nu-Tech2012)의 일환으로 개발된 원자로다. 국내 첫 1500㎿급 발전소로 모든 기술을 국산화, 수출 시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한 모델이다.
현재 쓰이는 APR1400보다 강화된 물리 형태의 안전 대책을 갖췄다. 미국 9·11 테러 이후 대형 항공기 충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형 해일 대비책을 설계 단계부터 반영했다.
APR+는 경북 영덕 천지원전 1·2호기부터 도입될 예정이었다. 영덕은 2015년 환경단체 주도로 원전 반대 주민 투표가 실시된 곳이다. 반대 투표는 법률 효력이 있는 33.3%의 투표율을 넘기지 못해 무산됐다.
이후 원자력계는 APR+ 천지원전 도입 가능성을 봤다. 지난해 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표준설계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천지원전 사업 자체가 흔들리면서 향방을 알 수 없다.
APR+ 후속으로 개발되고 있는 iPOWER는 개발 완료 여부도 불투명하다.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은 차차기 원자로인 iPOWER 예산을 증액하는 등 개발에 적극성을 보였다.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기술 개발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iPOWER는 완전 피동형 설계로, 발전소 전원이 모두 나간 상황에서도 중력과 같은 자연력만으로 원전이 스스로 정지하는 게 특징이다. 한수원은 이를 '혁신형 안전 원자로'라고 칭하며 기대했지만 개발 중단 위기에 놓였다.
우리나라는 '인공 태양'으로 불리는 핵융합로 ITER 개발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기 어려워졌다. ITER는 7개국이 프랑스 카다라슈에 핵융합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력기술이 건설관리 용역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핵연료 완전 연소 기술을 확보하면 원전 운영 환경에서 한 단계 도약이 기대된다. 국내 원전을 추가로 짓지 않기로 하면서 기술 개발 명분이 약해졌다.
원자력 관계자는 “지금 관심이 고리 1호기와 신고리 5·6호기 등 현안에 몰려 있지만 원자력 관련 산업과 연구 모두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표면으로 드러나는 원전 사업 불가와 전기요금을 넘어 그 영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