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에너지 정책 원칙과 절차 무너져

“외국계 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정책 불확실성이다. 정권에 따라 정책이 180도 바뀌니 리스크가 크다. 신고리 5, 6호기 문제는 정책 불확실성 측면에서 최악의 사례다.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새 정부의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공론화를 바라보는 원전 전문가의 반응이다. 이미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 중인 공사를 중지하는 것은 원칙과 절차가 무시된 행동이라는 평이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신뢰성이 무너졌다.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사업자의 인식도 악화됐다. 새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정지가 가져온 여파다. 공사 중단에 따른 매몰비용 2조6000억원, 이를 LNG와 신재생으로 대체할 경우 예상되는 추가비용 4조6000억원 등 사회적 비용부담은 두번째 문제다. 앞으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믿기 힘들게 됐다는 문제가 더 크게 다가온다.

공론화 계획을 밝힌 다음날인 28일 신고리 5, 6호기 건설에 참여한 두산중공업과 삼성물산 주가는 폭락했다. 이들을 포함해 협력사로 참여한 수백개 기업의 일거리가 사라졌다. 공론화 기간으로 계획된 3개월 동안 장비와 인력을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다. 공사 휴지기 동안 대금을 받을 수 있는지 지급 방법은 어떻게 되는지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에너지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고리 5·6호기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계획되고 지자체 인허가와 산업통상자원부 건설 승인 등의 절차를 거친 사업이다. 공정률 약 30%로 지반 강화작업 이후 본 건물 골조 올리기 작업을 앞뒀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던 만큼 “설마 공사 중인 사업을 세우라고 하겠냐”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업계는 그동안 지켜온 원칙이 한 순간에 무의미해졌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발전 업계 관계자는 “정식 절차를 거쳐 정부승인을 통해 진행한 사업을, 정부가 다시 취소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지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변칙'이 다른 분야 발전소 사업에도 적용될까 좌불안석이다.

공기업이 참여한 발전사업에 1차 후폭풍이 예상된다. 정부가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을 결정한 것은 주사업자가 공기업(한국수력원자력)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성하이, 당진에코 등 5·6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선정된 신규석탄화력 대다수에 공기업이 참여했다. 민간사업자는 첫 석탄화력시장 진출 사업 안정성을 위해 공기업과 한 배를 탔지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상황이다.

공론화 실효성도 의문이다. 업계는 새 정부 에너지 정책참여자가 환경단체 출신으로 포진됐다고 본다. 공론화위원회가 반핵단체로부터는 투명성을 인정받겠지만, 원자력계는 이미 답을 정해놓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푸념이 나온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가 대표적이다. 20개월의 격론 끝에 2015년 위원회가 권고안을 도출하고, 이를 토대로 고준위폐기물관리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그럼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중심으로 공론화를 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하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신고리 5, 6호기는 공론화를 제안했다.

업계는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해 불신을 드러냈다. 3차 전력수급계획 당시 설비제한정책으로 인한 2011년 9.15 순환정전사태, 수요예측과다에 따른 발전 부문 경쟁 심화, 사업자에 대한 수익제한 제도 등 정권에 따라 뒤바뀌는 구조에 땜질식 처방의 연속이란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 전력수급기본계획 등 국가 에너지 대계의 의미가 없어졌다”며 “계획을 세워봐야 정권이 달라지면 다시 뒤집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