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한 남자' 주드 로가 어느 날 고급 주택에 몰래 침입해 집주인을 때려눕힌 뒤 수술용 고무장갑을 낀 다음 메스를 꺼내 조심스럽게 그의 배를 가른다.
주드 로가 꺼낸 것은 바로 집주인이 빌려 간 '인공장기'다. 값비싼 인공장기를 할부로 구입한 사람이 할부금을 내지 못하고 연체하자 이를 회수하러 간 것이다. 그는 미래 세계에 등장하는 '인공장기 회수자'다.
영화 리포 맨은 우리 말로 치면 '떼인 돈 받아드립니다'쯤 될 것 같다. 아니 '인공장기 받아드립니다'가 맞을지 모르겠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장기가 널리 쓰인다. 하지만 인공장기 기술을 소수 회사가 과점하게 되고 가격이 치솟는다. 인공장기가 필요한 사람은 '할부의 노예'가 되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간다. 그리고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회수자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것이다.
리포맨에서는 회수자가 인공장기 할부금을 갚지 못하면서 이야기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전직 동료에게 쫓기게 된 신세가 된 회수자는 과연 무사히 장기를 보존할 수 있을까?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사실 인공장기가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세계 최초 인공장기 이용 사례가 등장한다. 의사 크리스천 버나드가 심장 기능 질환자에게 인공심장을 이식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환자는 18일밖에 생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40여년 뒤인 2006년이 돼서야 미국 아비오메드 사가 완전 삽입형 인공심장 '아비오코' 판매 허가를 받았다.
미국 신카디어 시스템즈는 2010년 외부에서 전력 공급이 가능한 완전 인공심장을 개발해 3명의 환자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2011년에는 스웨덴 연구진이 인공 기관지를 이식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서울대와 강원대 연구진이 돼지 간을 이용해 인공 간 개발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는 2024년, 국내에서는 2029년이면 인공장기 기술이 널리 확산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때가 되면 인공장기가 인체에 이식돼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10년 정도만 있으면 인공장기가 널리 퍼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례로 볼 때 가장 먼저 상용화가 가능한 인공장기는 신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신장은 전체 장기 이식의 49%를 차지할 정도로 이식이 활발하고 경험도 축적됐다.
처음에는 전자기기 방식의 인공장기를 사용하겠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점차 생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간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환자의 손상된 장기를 체외에서 배양 후 이식하는 것도 가능하다.
나중에는 3D 프린터를 이용한 '바이오 프린팅'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현재 장기이식 대기자가 2만명을 넘어 인공장기 개발은 장기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기술개발과 함께 인공장기가 불러올 윤리 문제 등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다른 건 몰라도 '내 몸뚱아리 하나' 만큼은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