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 넘는 규정에 수십개 관리기관…연구보다 행정박사 될 판

수십개 연구 관리 기관과 100개가 넘는 연구 관리 규정이 난립하면서 연구개발(R&D) 현장 행정 비효율이 심각하다. 선진국은 분야·기능별 5~6개 기관이 국가 R&D 사업 전체를 관리하는 것과 대조된다. 문재인 정부도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3일 미래창조과학부와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시행되는 법령, 행정규칙 등 각종 국가 R&D 관련 규정이 125개에 달한다. 이는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상 제공되는 법령 정보 기준으로, 산업기술 관리 규정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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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처·청이 지원하는 R&D 종류별로 규정을 따로 만들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현장 연구자는 국가 R&D 사업을 수행하려면 이들 규정을 일일이 검토해야 한다.

연구자는 국가 R&D 사업을 수행할 때 전문 기관의 관리를 받는다. 사업 수행 절차와 예산 집행 방법 등 규정이 다르면 해당 규정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연구자가 A기관 과제, B기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할 때 각각 다른 규정을 따른다.

미래부 소관의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정(공동관리규정)'이 있지만 부처·청 별 규정 난립을 막기는 어렵다.

미래부 관계자는 “공동관리규정은 각 R&D 규정이 공통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을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강제성은 부족하다”면서 “공동관리규정을 지키더라도 각 부처, 기관 별 사업 특성에 맞는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규정 난립도 문제지만 근원은 연구관리 전문기관이 너무 많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각 부처 산하에 많게는 3~4개씩 연구관리 전문기관을 두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같은 기관이 부처 사업을 받아 연구원에 주고 관리하는 체계다.

관리 기관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규정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부처별 주요 기관만 18개에 달한다. 이들 기관이 1개씩만 규정을 운용해도 18개 규정이 생긴다. 집계되진 않았지만 실제 과제 관리를 수행하는 진흥센터 등을 포함하면 20~30개 기관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가 R&D 거버넌스 및 관리 체계(자료 : 홍성주 STEPI 연구위원)
국가 R&D 거버넌스 및 관리 체계(자료 : 홍성주 STEPI 연구위원)

홍성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애초 중간기구를 설립한 목적은 기술의 빠른 확산이지만 지금은 정부 일을 대행하는 기관처럼 운영된다”면서 “규정이 복잡한 것도 문제지만 핵심은 행정 프로세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연구관리기관을 조정하고 행정 프로세스를 혁신하지 않으면 규정을 통일해도 행정 효율화를 이루기 어렵다”면서 “관리기관은 점진적으로 5~6개로 통합하고, PM(Project Management)기관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도 연구관리기관 난립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한다. 미래부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연구관리기관 조정 필요성을 보고했다. 새 정부 국정 과제로 채택되면 정책이 힘을 받을 수 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