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기초·원천 연구에 힘을 싣는다. 순수 기초 연구 지원 예산은 임기 내에 두 배 늘리기로 했다. 선진국 기술을 쫓아가는 '추격형 연구개발(R&D)' 전략이 한계에 달했다는 판단에서다. 선진 기술을 쫓아가는 것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기술, 제품, 서비스를 창출하려면 탄탄한 기초 연구 역량은 필수다. 기초·원천 연구 강화는 '과학기술 르네상스'는 물론 국가 R&D 체질 개선의 출발점인 셈이다.
기초 연구 지원 강화는 당장 내년부터 시작된다. 내년도 국가 R&D 예산 심의·조정 결과 관련 예산이 15.6% 늘어난 1조8000억원으로 책정됐다. 기반 조성 사업을 뺀 순수 연구 예산도 1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기초 연구 비중은 매년 늘었지만 이번에는 내실로도 달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정부 R&D 예산 가운데 기획연구, 연구소 지원 등 기초 분야의 예산은 2011년 3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5조2000억원까지 늘었다.
이 가운데 자유공모 R&D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27.9%에서 21.5%로 오히려 줄었다. 예산은 늘었는데 연구자가 쓸 돈은 주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과학계는 이 같은 현상이 연구 성과 정체와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연구자가 창의 연구 주제를 도출하기보다 '연구비 따기'에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선진 기술을 따라갈 수는 있어도 창의 연구 결과가 나오기 어려운 환경이다. 자유공모형 R&D는 연구자가 직접 연구 주제를 제안하고, 채택되면 연구비를 지원받는 방식이다. 이 비중을 높이는 게 당면 과제다.
정부는 내년부터 개선안을 반영하기로 했다. 기초연구 사업 내에서 연구 분야를 정부가 지정하는 하향식(톱다운) 전략 공모 과제는 줄인다. 이들 과제 전부를 자유공모형으로 단계별 전환한다.
실패 위험이 높은 R&D에도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한 미개척 분야, 목표가 높은 고위험 분야, 성과 도출이 시급한 분야의 R&D에는 중복·경쟁 과제를 한시 허용한다.
올해는 '경쟁형 R&D'에 8개 사업 121억원이 투입됐지만 내년에는 21개 사업 518억원이 배분된다. 문재인 정부의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목적이 '고위험 R&D 통합 기획'인 점과 상통한다.
기초·원천 R&D 거버넌스도 개편한다. 여러 부처가 각각 수행하고 있는 기초·원천 R&D 사업을 미래창조과학부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중·장기 기획, 성실 실패 인정 등 특수성이 요구되는 분야의 과제는 앞으로도 미래부가 모두 관리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방안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논의됐다. 최근 이진규 미래부 1차관도 공식 행사에서 공론화했다. 기초 연구 전략의 일관성 확보가 기대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사업 이관을 둘러싸고 불거질 부처 간 갈등 최소화가 당면 과제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