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로 기술 확보, 발주 입찰 선진화 등 괄목할 성과를 거뒀다. 공사 중단 반대 주장 배경에는 이 같은 연구개발(R&D)의 성과가 사장되는 것에 따른 아쉬움도 크다. 기존의 노후 원전보다 안전한 원자로가 쓰이는 신규 공사가 중단되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고리 5·6호기에 채택될 원자로는 3·4호기에 쓰인 것과 같은 노형인 'APR1400'이다. APR1400은 프랑스를 제치고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을 성공시킨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로다. 안전성, 경제성, 발전 용량이 기존 원자로보다 대폭 향상됐다.
APR1400은 설비 용량 140만㎾급 가압경수로다. 기존의 'OPR1000(100만㎾급)'보다 용량이 40% 크다. 상용 원전 기준으로 세계 최대 용량이 140만~150만㎾ 수준이다. 설계 수명은 40년에서 60년으로 늘어나고, 노심 손상 빈도는 1만년당 1회 미만에서 10만년당 1회 미만으로 감소했다. APR1400은 우리나라를 원전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한 주역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APR1400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원전 공포감이 높아진 만큼 안전성 강화에 주력했다. 내진 성능은 5.6배 향상됐다. 리히터 규모 7.0의 지진에도 견딘다. 격납 건물 손상 확률은 10분의 1로 낮아졌다. 100만년에 1회 미만 손상이 발생하는 정도다. 노심 손상 확률은 3분의 1 줄었다.
기본 내구성을 높인 것은 물론 중대 사고 대처 능력도 진화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신기술이 총동원됐다.
안전 주입 계통을 '저온관 주입' 방식에서 '원자로용기 직접 주입(DVI)' 방식으로 바꿨다. 냉각재 상실(LOCA) 사고 시 대처 능력을 대폭 높인 조치다. 기존처럼 배관을 통해 냉각재를 주입하면 냉각재가 배관으로 밀려나오는 증기 압력을 이기고 들어가야 한다.
반면 원자로에 직접 냉각재를 주입하면 효율이 더 높고 빠른 주입이 가능한 구조가 된다. 저온관 파단 시에도 안전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안전주입탱크 내 유량조절장치를 추가했다. 원전 사고 발생 시 냉각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다. 증기 배출 정도에 맞춰 냉각수 유량을 조절한다. 증기가 격하게 쏟아져 나올 때는 천천히, 증기가 적을 때는 빠르게 냉각수를 유입시키는 식이다. 안전하고 오랫동안 냉각수를 주입할 수 있다.
재장전수탱크는 건물 외부에서 내부로 옮겼다. 이른바 '원자로건물내 재장전수탱크(IRWST)' 방식이다. 안전주입펌프 흡인원을 전환할 필요가 없다. 사고 시 냉각 수원이 지속 제공되도록 했다.
신고리 5·6호기는 APR1400을 이용한 국내 두 번째 프로젝트다. 국내 원전 사상 처음으로 가격이 아닌 기술로 사업자를 선정했다. '최저가 입찰제'가 아닌 '최고 가치 입찰제'로 바꿨다. 제안 적정성보다 가격에 따라 희비가 갈리는 부작용, 시험성적서 위조 같은 입찰 비리를 차단했다.
원자력계 전문가는 “APR1400은 용량은 물론 안전과 경제성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로”라면서 “기술과 세계 시장 경쟁력은 신고리 5·6호 공사 중단과 별개로 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