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요. 작년에 18만원이던 재산세를 갑자기 480만원으로 올리다니요. 이미 납부한 취득세는 왜 열 배 가까이 더 내야 합니까. 이웃집은 그대로인데, 우리집만 고지서가 날아왔어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사람 차별 하는 겁니까?”
“일반주택과 별장은 세율이 다릅니다. 이웃집은 상시거주를 했으니 주택으로 세금이 나온거구요, 선생님댁은 주말에만 쓰셨으니 별장으로 과세된 겁니다. 납득이 안가시면 조세심판을 청구하시든가, 아니면 위헌법률소송을 하세요.”
세금폭탄이 황당한 A씨와 가평군 재산세 담당 주무관 B씨의 날 선 대화다. 은퇴를 앞둔 A씨는 가평에 세컨 하우스를 마련해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시골생활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A씨가 재산세 중과세를 취소해 달라고 거칠게 항의했지만, 가평군의 입장도 완강했다.
◆ 내 시골집이 별장으로 분류되면?...아뿔사 후회해도 재산세 최고 40배
최근 가평군 (군수 김성기)은 취득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주택을 대상으로 사치성 재산에 대한 일제 조사를 벌여, 실거주를 하지 않고 별장이나 주말농장으로 쓰는 집에 대해 재산세 중과를 통보했다. 주택구입 당시 이미 징수한 취득세도, 최고 10배 가까이 올려 재부과했다.
가평군이 A씨에게 재산세를 중과세한 근거는 뭘까. 세법상 주택이 아니라 별장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럼 별장과 주택은 어떻게 구별될까. 지방세법 제 13조 5항은 ‘늘 주거용으로 사용하지 아니하고 휴양•피서•놀이 등의 용도로 사용하는 건축물과 그 부속토지’를 별장으로 정의하고 있다.
세컨 하우스를 사 놓고 365일 살지 않는다면, 별장으로 중과세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시골집이 별장이 되면 세금은 얼마나 더 낼까. 현행법상 매입가액이 6억원 이하인 주택의 취득세는 1%다. 만일 가평에 2억원의 주택을 마련했다면, 취득세는 200만원이 부가된다. 하지만 상시거주를 하지 않고 주말에만 사용하다 적발되면, 8%가 가산되어 총 1800만원으로 조정된다.
재산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재산세는 주택가격의 60%를 과표로 0.1~0.4%의 세율을 적용하는데 비해, 별장은 일괄 4% 세율이 매겨진다. 따라서 매년 18만원에 불과하던 재산세는 480만원으로 무려 26배가 뛰게 된다. 세율이 0.1%인 6천만원 이하 주택의 경우는 최대 40배까지 무거워지는 셈이다.

◆ 별장이냐 주택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애매한 규정이 조세저항 불러와
이번 조치에 대해 일부 주민들은 가평군이 너무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부족한 세수를 채우기 위해 지난해에는 주택으로 눈감아주던 집을 올해는 별장으로 통보했다는 볼 멘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전문가들도 사치성 재산으로 인식되는 별장과 일반인의 주말주택을 구분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게 중론이다. 대기업 회장의 호화별장도 전입신고만 해 놓으면 주택이고, 허름한 농가주택도 비워 놓으면 별장으로 중과세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 대장상 어디에도 ‘별장’이라는 용도가 표기되지는 않는다.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공동주택 등으로 나뉠 뿐이다. 현행 지방세법상 해당 건축물이 주택이냐 별장이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상시거주’ 밖에 없다. 그리고 상시거주 요건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지자체에 달려 있다. 건축물 대장상 지정되지 않은 별장에 대해 지자체가 마음대로 해석해 세금을 부과하다 보니 조세저항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우선 ‘상시거주’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일주일에 몇 번 이상 머물러야 주택으로 인정될까. 은퇴부부가 함께 살다 남편이 노환으로 요양병원으로 옮긴 후, 시골살림과 간호를 병행하기 위해 아내가 집을 자주 비웠다면 별장으로 신고해야 할까. 법인대표가 수도권에 지사를 설립하고 본인 소유의 집을 임직원 숙소로 무상제공한 경우는, 임대료 계약서가 없다는 이유로 중과세를 감수해야 할까. 4일은 도시에서 3일은 전원생활을 즐기고 싶은 직장인들은 세금이 무서워 이른바 ‘4도 3촌’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걸까.
이처럼 기준이 주관적이다 보니 지자체와 주민간에 마찰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문제가 된 가평군의 경우 다른 지자체보다 강도 높은 조사를 벌여 원성을 산 것으로 보인다. 세수확대를 위해 법적용을 너무 가혹하게 한 것이 아니냐고 중과세 대상자들은 항변한다.
마치 경찰이 잠복근무를 해서 범죄자 색출하듯이 외지에서 온 단독주택 소유자들을 감시하고 꼬투리를 잡은 것은 지나친 처사였다는 지적이다. 동네 이장이나 경비실 근무자들에게 상시 거주하지 않는 집을 알려달라며 신고를 부추겨 이웃 간에 불화가 생겼다는 증언도 들린다.
실제로 가평군 재산세 담당 주무관은 “일몰 후 야심한 시간에 별장으로 의심되는 주택을 방문해 주차장에 차는 세워져 있는지, 혹시 집주인이 서울에 살면서 휴양시설로 이용하는 것은 아닌지 탐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암행조사는 가평 뿐 아니라 이웃 양평과 강원도 제주도 등 많은 지자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담당주무관은 덧붙였다. 세수확대보다 조세정의 차원에서 봐 달라는 설명이다.

◆ 뚜렷한 기준 없는 과세강화...지자체 부동산 시장에 악재 될 수도
억울하면 소송을 할 수도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전입신고를 못했어도 실거주만 했다면, 승소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사소한 증거자료들을 모아야 하기 때문에 번거롭고 시간소비도 많다.
예를 들어 은퇴를 앞두고 도심의 회사와 가평을 오고갔다면, 경춘 고속도로 설악 톨게이트나 가평 톨게이트의 상하행선 통행료 결제가 출퇴근을 위해 월평균 20회 이상 이뤄졌다는 것을 증빙하면 되는 식이다. 별장으로 쓰는 이웃집에 비해 월평균 전기와 도시가스 사용료가 훨씬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영수증도 제출해야 한다.
만일 주말에만 썼다면, 별장이 아니라 은퇴를 대비해 미리 사놓은 세컨 하우스라고 해도 법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없다.
최근 여론조사업체 엠브레인이 은퇴 시기가 멀지 않은 40~50대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후에 살기 좋은 도시’ 로 제주도에 이어 가평이 2위로 선정됐다. 주거 유형 중에선 단독주택을 원하는 사람이 44.1%로 가장 많았다. 상가주택에서 월세를 받아 노후 생활을 하겠다는 응답자는 0.8%에 불과했다. 아파트나 타운하우스보다도 정원 딸린 집에서 노후를 보내는 게 우리나라 중년층의 로망이라는 얘기다.
이처럼 세컨 하우스와 주말농장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이를 사치성 재산으로 보고 과세를 강화한다면 전원 속의 내 집을 마련하려는 은퇴자들의 꿈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지자체의 부동산시장에도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가평같은 곳에서 조세저항이 생겨나면, 자칫 지자체의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을 불러 올 수도 있다.
실제로 가평군의 한 부동산 대표는 “이번 중과대상에 포함된 후, 분양가 대비 50% 이하의 가격으로 급매를 내놓고 간 집도 있다”고 귀뜸했다.
제보자 A씨도 취재가 진행중인 본지에 전화를 걸어 피해자들끼리 연대해 소송을 진행하려다가 그냥 포기했다고 말했다. “투기 목적도 아니고 노후를 위해 마련한 시골집인데, 호화주택 취급을 받는다면 가평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요. 공동텃밭을 주는 도심의 아파트나, 아담한 옥상정원이 갖춰진 골목주택을 알아봐야죠. 이제 전원주택의 꿈은 접었습니다.”
이향선기자 hyangseon.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