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이사진이 민형사상 책임을 한수원이 지기로 한 상태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중단을 의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일시중단 의견을 표명한 상황에서 이사진이 책임은 피하면서 사실상 선택권이 없는 의결을 한 셈이다.
18일 국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정훈·이채익 의원(자유한국당)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이사회 회의록에 따르면 14일 회의에서는 기습이사회 개최와 공사 영구정지를 막기 위한 방안, 3개월의 공사 중단 기간에 대한 격론이 있었다.
이날 회의는 시작 전부터 개최 정당성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13일 열려던 이사회가 노조 반대로 무산된 후 바로 다음날에 기습 이사회를 여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시일을 늦춰 향후에 의결을 한다 해도 결론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반론이 상충했다.
기습 개최에 부담을 느낀 일부 이사는 “이날 모임은 간담회 형식으로 끝내고 좀 더 심사숙고해 다시 논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사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측은 “부담돼도 피할 수 없는 문제고 지금 사태를 장기화 할 수 없다”는데 무게를 뒀다.
이사회 결정은 사실상 선택권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이 신고리 5·6호기의 향방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주관하고, 공론화를 계획과 한수원에게 일시중단은 결론 내리도록 한 것이 이미 이 사안에 대한 답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A 이사는 “이미 국회는 통과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인들이 찬성을 하더라도 민형사상 책임을 확실히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한수원 이사회 입장에서는 시간의 문제였을 뿐 정부가 원하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사진은 공사 영구정지는 막고, 민형사상 책임은 회사(한수원)가 지는 것을 조건부로 내세우면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사회 중에는 공사 일시중단 기간을 두고 또 한 차례 논쟁이 붙었다. 중단 기간을 국무조정실이 언급한 공론화기간 3개월에 맞출지, 아니면 공론화기간 시작부터 종료일로 할지였다.
공론화 작업이 3개월 안에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기간을 확정하면 이사회가 또 한 번의 부담을 떠안는다는 우려였다. 논의 끝에 3개월 일시중단, 공론화 기간 연장시 재의결로 정리됐다.
이사회는 약 1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일시중단 보상은 공사 예비비로 처리하기로 했다. 이에 따른 배임이나 손해배상 문제는 이사진 개개인이 아닌 한수원이 책임지는 것을 재차 확인하며 회의를 마쳤다.
조정형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