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플세미컨덕터 경영진이 4000억원대 무역금융 범죄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선 이 같은 범죄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번 사기 범죄에 이용된 나노팹 인프라의 웨이퍼 품질이나 반출 관리시스템에 허점이 적기 않기 때문이다.
메이플세미컨덕터는 경기도 부천에 본사가 있고 정부 주도로 설립된 포항공대 나노융합기술원(포항나노팹)에서 공정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임대해 생산 활동을 했다. 이들이 불량 웨이퍼를 정상 제품으로 속여 수출 실적을 조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나노팹 인프라가 별도로 웨이퍼 완성품의 품질, 반출 관리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도체 디자인하우스 업체의 한 대표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나 해외 파운드리 업체는 품질 관리가 엄격해 불량품이 많은 웨이퍼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폐기한다”면서 “메이플세미컨덕터처럼 범죄에 악용하거나 누군가 횡령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 품질관리는 대부분 최고경영자 직속 부서로 정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팹리스 업체 대표는 “속이려고 달려들면 이처럼 불량 웨이퍼를 수출하고 서류를 조작해도 쉽게 잡아내기가 힘들다”면서 “중소업체가 나노팹 인프라에서 지금처럼 자유롭게 제품을 찍어낼 수 있다면 자칫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 이 같은 수출 금융사기 유혹을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팹리스 업체 대표는 “제2, 제3의 메이플세미컨덕터 사례가 나오지 않게 하려면 정부 나노팹에서 웨이퍼가 반출될 때 이를 기록하거나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적용돼야 할 것”이라면서 “국가 자금이 들어간 시설을 저렴하게 활용하는 대신 관리 영역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포항나노팹 관계자는 “민간 기업과 계약이고 그 회사 영업비밀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생산규모나, 생산 제품 종류를 우리가 알지 못한다”면서 “메이플세미컨덕터는 1월 법정관리 이후 3월에 계약을 해지했고, 임대료 등 우리도 못 받은 돈이 있다”고 말했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메이플세미컨덕터가 불량 웨이퍼를 정상품으로 둔갑시켜 수출한 것처럼 속이고 1370억원 부당대충, 960억원 수출입 물품가격 허위신고 등 총 4049억원의 무역금융 범죄를 저지른 이 회사 박모 대표 외 2명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6월 구속됐다. 이들은 불량 웨이퍼를 정상으로 속여 수출 가격을 장당 최대 800달러로 부풀리는 등 2011년부터 총 294회에 걸쳐 수출신고 실적을 조작했다. 이를 토대로 국내 5개 은행에 허위 수출채권을 매각해 1370억원 대출을 받았다. 채권 만기가 도래하면 다시 허위 수출채권을 은행에 매각하는 이른바 '뺑뺑이 무역'을 반복하다 파산 지경에 이르자 올해 1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회사 박 모 대표는 삼성전자 부천반도체 사업장, 페어차일드반도체 출신이다. 2008년 7월 메이플세미컨덕터를 설립했다. 회사 주력 제품은 650볼트(V) 고전압 모스펫(MOSFET) 전력 반도체다. 냉장고 등 전자제품에 주로 탑재돼 전력을 제어한다. 기술 난도가 높지 않은 이른바 '저가' 제품이지만, 회사는 중국 수출 확대로 실적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해왔다. 메이플세미컨덕터의 지난해 장부상 매출은 714억원, 영업이익은 42억원이었다. 매년 두 자릿수가 넘는 실적 성장을 한 것으로 보였다.
국내 몇 없는 전력 반도체 업체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국책으로 진행된 연구개발(R&D) 과제도 두루 따낸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과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기기용 실리콘카바이드(SIC) 화합물 전력반도체를 공동 개발하고 기술이전을 받았다. 2010년부터 300만달러, 500만달러, 1000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했고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산업통상자원부 표창도 받았다. 모두를 감쪽같이 속인 것이다.
이 회사 사정을 잘 아는 국내 한 대학의 교수는 “메이플세미컨덕터가 아예 제품 판매가 없지는 않았던 것으로 아는데, 저가 제품으로 저 정도 실적을 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면서 “지난해 연말부터 무역사기가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는데 결국 그것이 사실로 드러나 적잖게 놀랐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