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터넷 인프라 보급과 함께 온라인 게임 시장을 선점했던, 게임 코리아의 찬란한 영광의 시대는 끝났다. 한국 게임 산업은 이제 심각의 수준을 넘어선, 극소수의 메이저를 제외한 대다수의 업체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큰 위기감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중소게임사의 위기라는 말조차 식상하게 들릴 만큼 중소 게임 개발사를 넘어 대형 게임 업체들도 예외 없이 한국 게임계의 몰락은 가속화 되고 있다. 이 위기를 자초한 것이 정부이건, 산업이건 누구에게 책임을 묻는 것조차 불필요할 만큼 심각한 위기의 그림자는 이미 게임계 전반에 깊게 드리워 있다. 한국 게임 산업 내부는 깊게 곪아 들었고 병세는 언제 회복될지 모를 정도의 장기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게임 산업은 여전히 한국 문화 콘텐츠 수출액의 절반을 차지하는 효자 산업이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장에서 넷마블을 필두로 한 몇몇 메이저 업체들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고, 극소수이긴 하지만 이꼬르, 비트망고 등 중소업체들의 희소한 글로벌 성공기도 주목 받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서머너즈 워’와 ‘세븐나이츠’의 글로벌 성공은 물론 대단한 것이지만, 여기에 한국 게임의 드라마틱한 부활 시나리오를 더 이상 기대해서는 안 된다. 게임에 대한 투자도, 게임을 제작해 퍼블리싱이 될 가능성도, 자력으로 런칭 해서 안정적인 매출을 내는 것도 이제 불가능에 가깝다. 더하여 이제 한국 게임들을 계약금을 주고 계약할 수 있는 해외 퍼블리셔들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인정하자. 이미 시장은 오래전에 변했고, 한 때나마 독점적이었던 우리의 경쟁력은 사라졌다.
이건 단순히 시장 포화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개발 경쟁력의 하락 혹은 전체적인 상향평준화의 지점으로 봐야 할 것이다. 솔직히 게임 개발에 있어 중국이 한국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중국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유럽의 프랑스, 스페인 등 전 세계에 게임 개발을 잘하는 개발자는 너무나도 많다. 심지어 캄보디아의 게임조차도 나름의 퀼리티를 갖춘 글로벌 경쟁의 지점에 우리는 오래 전에 도달했던 것이다.
이 뿐인가? 셧다운제 등 정부로부터 출발한 한국 게임에 대한 규제 그리고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은 게임 산업의 인재 유입까지 차단하고, 가뜩이나 기운 빠진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남은 의지마저 소멸시켜 버렸다. 중국은 칭화대와 북경대의 최고 인재들이 게임 회사에 입사하고 한 회사에서 200개의 스튜디오를 가지고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이미 규모와 퀼리티 면에서 한국은 우습게 뛰어넘어버린 상황이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게임 산업의 국가적 경쟁력은 더욱 희미해져가고 있다.
대형 게임사들도 더 이상의 구조조정을 할 수 없을 만큼 이미 몸집을 줄였다. 거기에서 방출된 개발자들 혹은 온라인 게임 호시절 투자를 받아 운영했던 중견 회사 출신의 개발자들은 이제 업계를 떠나거나 혹은 제각기 파편화된 인디 개발자로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자생하고 있다. 현 시점의 게임 한국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고, 이 긴 빙하기가 언제 끝날지 예측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흩어진 인디개발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게임 산업의 근간을 이어갈 희망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필자는 반드시 '인디 십만 양병'을 통해 다가올 게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간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글로벌 허브 센터를 육성했다면 이제는 인디만을 위한 글로벌 인디 허브 센터의 구축이 시급하다. 인디 허브 센터라 함은 소규모 게임 제작자들이 창의적인 게임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게임 개발자의 급여를 제외한 개발 외의 모든 제반 인프라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여기에는 제작 지원 공간, 개발 소프트웨어 지원, 세무 회계 지원, 계약 및 법무 지원, QA 지원, 런칭 및 CS 지원, 홍보 및 마케팅 지원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며, 글로벌 인디 허브 센터는 인디 게임 개발자들의 자연스러운 오프라인 커뮤니티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모든 인디 게임 개발자들에게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자는 취지는 아니다. 성과를 내는 지점에 따라 마케팅 비용 및 언어 번역 지원 쿠폰 등 성과 별 차등 지원 제도를 통해 인디 개발자가 스스로 필요로 하거나 원하는 번역 언어 혹은 지원 받을 서비스를 선택하는 수많은 인디에 맞는 개별 맞춤형 지원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미 성큼 다가온 VR시대, 그리고 포화된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더욱 특화되고 퀄리티 좋은 검증된 장르 게임들로 시장을 꾸준히 두드리는 방법뿐이다. 수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장르 게임에 깊이 매진할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 조성과 체계적인 런칭 서비스 지원을 통해, 모든 인디가 글로벌 성과를 내는 지점까지 꾸준히 서포트 하는 장기적인 인프라 투자만이 한국 게임 산업의 명맥을 이을 마지막 활로가 될 것이다.
필자소개/ 정무식
루노소프트(Lunosoft) 부사장. 1994년 트리거소프트로 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 엔씨소프트, 그라비티(사외이사), 고릴라바나나를 거쳐온 국내 1세대 게임 개발자로 20년 넘게 한국 게임을 해외에 수출하고 서비스 해온 글로벌 게임 서비스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