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5일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의 부제를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붙였다. 외형 성장, 모방·추격형 성장과 같은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는 저성장·양극화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일자리 중심, 소득 주도 성장'과 '혁신 성장'이라는 쌍끌이 방식의 경제 성장을 추진한다. 동시에 공정경제 체계를 갖춰 성장의 과실을 경제 전반에 골고루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사람 중심 경제'를 구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소득은 '늘리고' 생계비는 '낮추고'…최저임금 인상이 걸림돌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은 소득 주도 성장에서 시작한다. 가계소득을 늘려야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고, 실질 가처분소득이 늘면 소비도 확대된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최저임금 시급 1만원 달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높인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 주도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판단했다. 그러나 소상공인, 중소기업 등이 인건비 부담 확대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1만원 인상까지는 걸림돌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 임금을 올해보다 16.4% 많은 7530원으로 결정했을 때도 중소기업계는 강력 반발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1만원이라는 정치 구호에 모든 논의가 함몰되면서 성급하게 기존 인상률의 두 배가 넘는 최저 임금 인상을 밀어붙인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소득을 늘리는 동시에 주거비, 교통비, 통신비 등 핵심 생계비는 낮출 방침이다.
주거 부문에서는 연 17만가구 공공 임대주택을 공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상의 공공 임대주택 비율을 달성(6.3→9%)한다. 청년층 수요가 높은 도심 내 공공 임대주택 5만가구 확충 계획이 눈에 띈다. 정부는 노후 공공청사 등 복합 개발 2만채, 매입임대리츠 2만가구, 노후주택 리모델링 1만가구 등 총 5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노후 공공청사 복합 개발의 중점은 지방자치단체 소유가 아니라 기재부가 관리하는 중앙부처 소유의 청사”라면서 “우체국·경찰서·파출소 등 30년 이상 된 건물을 조사해 재개발하면서 원래 공간은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청년이 원하는 소규모 임대주택을 도입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통비 절감을 위해 광역 알뜰교통카드를 도입하고, 광역버스 노선을 추가할 방침이다. 통신비를 낮추기 위해 기초연금수급자·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월 1만1000원을 깎아주고, 휴대폰 선택약정 할인율은 기존의 20%에서 25%로 높인다. 단말기 지원금 상한제 조기 폐지, 분리공시제도 도입 등을 추진한다. 미수금 정산완료를 반영, 도시가스 요금도 8~9% 인하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도시가스 요금 인하는 국민께 도움이 되는 구체적 방안”이라며 “지방의 도시가스 수요 충족 방안도 강구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국정 운영 '일자리' 중심으로…'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는다
일자리 문제 해결은 가계 소득 확충과 맞물려 있다. 정부는 고용 친화형 경제·사회 시스템을 구축, '고용 없는 성장' 극복을 목표로 세웠다.
예산·세제 등 모든 정책 수단을 일자리 중심으로 재설계한다. 일자리 지원 세제 3대 패키지를 마련하는 등 고용 중심으로 세제를 개편할 계획이다. 다음 달 2일 발표하는 세법 개정안에서 자세한 내용을 공개한다.
정책 금융 부문에서는 기업의 고용 실적에 따라 금리를 우대하고 이자 환급을 강화할 방침이다. 제조업의 기업 해외 이전을 축소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를 위해 인센티브 제도를 개편한다. 외투기업, 유턴기업, 지방 이전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각종 투자 유치 제도는 통합한다.
정부는 “지역에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은 국적과 무관하게 최우선 지원할 방침”이라면서 “외국인투자 금지·제한 업종을 전면 재점검하고 개방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노동 시장에 대한 재정 투자는 총 재정 지출 증가율 이상으로 지속 확대한다. 고용·복지 분야 예산 증가율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경제 주체의 생산성 경쟁 의욕을 높이고 성장 과실을 골고루 분배하려면 공정경제 체계 구축이 필수라고 판단했다.
국가 차원에서 갑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을지로위원회'를 설치한다. 하도급·가맹·유통·대리점 등 고질화된 불공정 행위의 근절을 위한 제도 개선, 법 집행 강화에 나선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개선하고, 조사권 일부를 지자체와 분담하는 등 불공정 거래 감시 역량을 강화한다.
공정위 인력 충원, 국회와 협력이 해결 과제다. 공정위는 기업집단국 신설 등을 위해 조직 개편, 인력 충원을 행정자치부와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 등으로 계획만큼 인력을 늘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공정위가 추진하는 주요 과제는 법 개정 사안이어서 국회와의 협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정부는 동반 성장 문화 정착을 위해 상생 협력 지원 세제 4대 패키지를 추진한다. 대기업이 이익을 중소협력사와 공유·출연할 때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상생협력기금에 출연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소득환류세제 과세 대상 차감액을 확대한다. 기업의 이익을 근로자와 공유하면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상생 결제 세액 공제 대상은 종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까지 확대한다.
◇지출증가율, 성장률보다 높게 관리…증세는 '글쎄'
정부는 주요 경제 정책 추진을 위해 재정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5년 동안 지출 증가 속도를 경상성장률보다 높게 관리할 방침이다. 경상성장률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경제성장률이다. 정부가 경상성장률을 연간 4.6%로 전망한 만큼 연평균 재정 지출 증가율은 최소 5% 안팎 설정이 예상된다.
이 차관보는 “재정전략회의 등에서 경상성장률을 4.5~5%로 전망했는데 지출 증가는 조금 더 높게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면서 “사회 안전망 확충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면 재정에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표현으로 이해해 달라”고 요청했다.
OECD 최저 수준인 재정의 분배개선율(지니계수 개선율)은 종전 10%대에서 20%대로 높인다. 지니계수 개선율은 세전 지니계수와 세후 지니계수 간 차이를 비율로 나타낸 것으로, 높을수록 조세를 통한 소득 분배가 잘 이뤄진다는 의미다.
정부가 재정 역할을 강조했지만 재원 마련, 재정 건전화 대책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세가 대안으로 꼽히지만 정부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는 상황이다.
증세와 관련해 이 차관보는 “기재부 내에서 상당 기간 고민하던 사항”이라면서 “어떤 방향으로 갈지, 무엇을 포함하는지, 어느 수준일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